구미에서 상주까지 (56)
금정산의 최고봉인 고당봉에서 장군봉을 거쳐 질래쉼터까지 오는 길은 정말 힘든 노정의 등산길이다. 그러나 이 길이 젊은 순례자들을 훈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노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질래쉼터에서 양산 다방 삼거리까지의 길은 임도가 있어 험하지 않은 길이라 호젓한 숲길을 걷는 즐거움이 큰 길이다.
그날 필자는 다방 삼거리에서 그날의 목표지인 물금역으로 바로 가지 않고 양산시청에 들렀다. 그것은 배위량이 1893년 4월 19일(수)에 쓴 일기에 나오는 황산역을 찾고 싶은데, 아는 사람이 없어 혹 양산시청에 가면 역사나 문화유적 담당하는 공무원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이미 2015년 11월 30일(월)-2015년12월5일(토)까지 한 주간 동안 전체 제 2차 배위량 순회전도 여행길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돌아볼 때 2015년 11월 30일(월)에 부산 동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양산으로 와서 양산 시청에 들렀고 그때 이미 한 번 양산에서 여러 가지를 문의하고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 그 공무원도 황산역을 모르고 있었다. 단지 그는 낙동강변에 황산공원을 조성하고 있으니 그 근처쯤 가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여 황산공원 조성지로 가서 사람들에게 물어 봐도 아는 기색을 찾을 수 없었기에 다시 그것에 대하여 상담하고 싶었다.
황산역은 분명히 오늘날의 기차역이 아니라, 조선시대 파말마를 띄우고 하던 옛날 교통의 요지였다. 그런데 그런 역이 지금의 교통수단과는 많이 달라 그 역사적인 흔적이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1월 13일(수)에는 청도역으로 기차를 타고 가서 청도역에서부터 혼자 팔조령 전체를 넘어 가창 삼산교회를 거쳐 가창면 사무소를 지나 신천을 통해 대구제일교회까지 약 12시간 동안 배위량순례길을 도보로 순례했다. 청도역에서 대구제일교회까지는 통상의 걸음으로는 이틀길이다. 그런데 그날 날씨도 춥고 혼자였기에 길을 재촉하여 그날 목표를 달성했다.
당시에는 가창에서 상동교까지는 신천의 자전거길과 산책로가 없어 들길과 대로를 번갈아 가면서 걸었다. 그러나 상동교부터는 신천을 따라 산책로가 놓여있어 걷기에 좋았다. 신천을 따라 걷다가 수성교까지 와서 시내길을 따라 와서 반월당까지 와서 반월당에서부터는 영남대로를 통하여 옛 대구 제일교회(현 대구기독교역사관)까지 왔다. 대구에 분명하게 남아 있는 영남대로 길을 옛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으면서 걸었다. 부산에서 대구까지의 고단한 순례길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음에 참 감격했고 또 감사했다.
그 이튿날인 1월 14일(목)에는 대구에서 동명까지 배위량순례길을 또 홀로 도보 순례를 했는데, 그때는 우선 대구제일교회로 가서 시내길로 동촌에 있는 해맞이공원까지 와서 그곳에서 금호강을 건너가 금호강을 따라 동변동과 서동까지 가서 국우동으로 가고자 했다. 그런데 서변동에서 국우동 가는 길에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국우터널을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터널을 지나가는 일이 위험하여 그 가로막고 있는 산을 넘어갔다. 마침 겨울철이라 산에 옛날 나무꾼들이 나무짐을 지고 다닌 길이 있을 것이고 그 길을 찾으면 가시덤불을 헤치고 가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산을 넘어가는 것으로 정하였다. 산 정상까지는 가시덤불을 걷어내면서 길을 찾아 갔지만, 산 정상까지 가니 등산객들이 다니는 길이 나타나 그 등산길을 따라 평안한 마음으로 국우동으로 내려와서 국우동사무소-경북대 칠곡병원과 도시철도 3호선 차고지를 거쳐서 팔거천의 제방둑길을 따라 동명 면사무소까지 걸었다. 팔거천을 따라 지금은 대부분이 자전거길이 생겨 시민들이 자유롭게 산책을 즐기지만, 당시에는 자연 그대로의 제방길이라 길이 끊어지기도 하여 논둑길 밭둑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길이 끊어지면 다리를 걷고 팔거천을 건너기도 하면서 걸었다.
2016년 1월 19일(화)에는 동명에서 구미 인동까지 혼자 걸었다. 그날 새벽에 집에서 시내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동명까지 가서 면사무소에 들렀다. 그날에 동명에서 구미 인동까지 가야 하지만, 길을 몰라 면사무소에서 길을 문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요즈음은 간혹 국토순례를 하기 위하여 한 달 두 달 동안 전국을 순회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 외에는 먼 길을 걷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길은 대로(大路)만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면사무소의 공무원들도 거의 길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도 무슨 정보라도 얻어야 길을 갈 수 있겠기에 담당 공무원을 찾았다. 그런데 그 공무원은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경이롭게 쳐다보면서 “여기에서 구미 인동까지는 그렇게 걸어서 못 갑니다. 면사무소 앞에서 구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시면 금방 갈 수 있을텐데, 왜 이리 고집을 부리십니까?”라고 말하여 “시외버스로 여기서 구미 인동까지 지난해 연말에 이미 가 보았고 이번에는 걸어서 갈 생각인데, 알고 있는 한에서만 길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동명에서 가산과 장천을 거쳐 구미 인동으로 가는 길을 걷고자 했다. 그런데 그가 그 길은 큰 도로가 많아 위험하다고 극구 만류하여 지천면을 통과하는 이면도로 길을 걷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부산에서 대구로 오는 길은 대부분 낙동강변을 따라 걷고 방향을 북으로 잡아 무턱대고 걸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길이지만, 동명에서 구미 인동까지의 길은 온통 모르는 첫 길이고 길도 여러 갈래여서, 많이 긴장되었다. 그날 동명 면사무소에서 길을 알아본다고 시간을 많이 지체하여 구미까지 가려면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동명면과 지천면 경계에 있는 청구공원묘지란 거대한 공원묘지가 나타났다. 가는 길에 경북노회에 속한 황학교회에 잠깐 들러 기도를 한 후 요술의 고개를 통과하여 낙동강 강변길을 따라 걸어갔는데, 봉우리에서 길이 더 이상 없었다. 길이 끊어져 더 이상 갈 수가 없어 산길로 따라 내려가야 했지만, 해는 이미 져서 어둠이 내리는 시간이고 몸도 많이 피곤하여 그 산길을 따라 다시 내려가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어둑한 산록을 따라 가시밭을 뚫고 가파른 산록을 내려오니 큰 도로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미 가로등 불빛이 온 누리를 밝히는 시간이었다.(지금은 낙동강변을 따라 자전거 길이 조성되어 걷기에 아주 좋음) 인동으로 가서 길가에 있는 자그마한 편의점을 찾아 그곳에서 늦은 저녁으로 컵라면과 물 한 병을 사서 먹는 그 맛은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맛이 좋았다. 그러나 감미로운 식사 시간을 편의점에서 계속 누릴 시간이 더 이상 없었다. 시간은 이미 밤 10시가 가까워 있었다. 구미에서 대구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하여 서둘러 구미대교를 건너 구미공단 매표소까지 약 4km 되는 도시 길을 또 걸어서 가야 대구로 가는 고속버스를 탈 수 있었다. 약 4km이면 통상 1시간 동안 걷는 길인데, 30분밖에 시간이 없었다. 뛰다시피하는 속보로 시간 내에 겨우 도착하여 대구로 가는 막차를 탈 수 있었다. 멀고 힘든 하루였지만,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