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 존경하는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수필가로 <길은 우리 앞에 있다> <대통령의 웃음> 등 수필집 몇 권을 남겼다. 4.19 무렵 전후 해서 연세 교정에서 뵙던 김교수를 졸업 후에는 여러 곳의 강연장에서 만났다.
특유의 개성 있는 말 솜씨로 영시도 줄줄 외며 정몽주, 성삼문 등의 고시조를 인용해가며 역사의식이 독특한 명강연을 하셨다. 90을 넘긴 연세로 지금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신다.
2009년도 8월 20일 합신교단 제17회기 전국장로회가 주관하는 장로여름수련회가 경주 코모도 호텔에서 열릴 때 특강 강사로 김동길 교수를 모셨다.
평남 맹산 출신으로 삼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나 가난 속에 살았다고 했다. 어머님 기도로 누나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교육부 장관 역임)과 김동길 김옥영 3남매가 다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김일성 공산 독재 정치가 싫어 가족이 월남하고 어머님 은혜로 자식들이 교육받고 김 교수는 미국으로 유학하여 보스턴 대학원에서 미국사 전공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에 백낙준 총장을 모시고 연세대 강단에 서게 된 것이라 했다.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훌륭한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박정희 정권 때는 김 교수를 유신헌법 긴급조치 9호위반으로 15년 유죄언도를 내려 옥고도 치뤘으나 박정희의 독재정치를 이해하고 오히려 공적을 높혀 주었다.
2018년도 조선일보에 ‘100년의 사람들’ ‘김동길 인물에세이’란에서 김동길 교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인물을 가려내어 그 공과에 대해서 나름대로 객관적 평가를 내렸다. 정치인은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등을 평가했다 김동길 교수가 전두환 정권 때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은 낚시나 가라고 비판했다. 군인 대장 출신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물러나고 새로 서는 김영삼, 김대중 문민정부에 국민은 큰 민주정치를 기대했으나 아들들의 경제부조리로 국민의 실망을 안겨 주고 물러났다. 김종필도 장수 국무총리만 하다가 정가를 떠났다. 3김 낚시론을 제기했던 김동길 교수도 한때 국회의원을 지내며 현대그룹 왕회장 정주영을 통일국민당 14대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힘껏 밀어 드렸다.
선거 실패 후 김동길 교수도 곧 정가를 떠났다. 학자로 교수로 수필가로 돌아온 것이다. 바른 나라 세우기, 밝은 겨레로 살아가기 그리고 연세대 교수 재직시에 한글독립운동가 외솔 최현배(1894-1970) 부총장 영향 때문에 한글사랑 나라사랑 하기 등에 온 힘을 기울였다. 나의 소개로 김동길 교수를 소개받은 대신고교 김한수 교장은 김동길 교수를 고3 졸업반 학생들에게 교훈 주실 특강 선생님으로 가끔 모셨다. 인격 높은 김동길 교수를 김한수 교장은 스스럼없이 형님으로 모셨다. 어느 날 점심 대접을 하려했더니 김동길 교수는 당신의 집으로 오라 했다. 신촌 연세대 뒤 김옥길 김동길 이름이 나란히 쓰인 문패가 걸린 김동길 교수댁으로 갔다. 곧 가정부가 따뜻한 갈비탕을 끓여왔다. 맛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결혼한 김동길 교수 아내나 그의 며느리나 딸이 갈비탕으로 대접했다면 한결 더 갈비탕 맛이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커피 마시러 가는 서실 문고리에 종이뭉치가 한움큼 걸려 있다.
김 교수는 “오 선생 이게 뭔지 아시오”하며 나를 바라본다 “뭔데요?” 내가 대답하니 “내게 보내온 원고 청탁서요”말씀하며 시간만 있으면 글을 쓴다고 했다. 누님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 별세 때 조문을 갔다. 누이동생 아들과 함께 김 교수가 상주로 맞이했다. 누이동생 김옥영 선생은 나와 함께 중앙여고 교무실에서 만난 동료교사였다. 곧 이화여대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김동길 교수 뵐 때마다 부부 행복을 모르는 총각모습이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