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원 ‘향린원’ 선생님 ③
행복은 잡힐 듯 잡혀지지 않아
우리 주변 논배미 안에 있는 것
행복을 느끼는 데서부터 출발
참된 행복은 영혼 전체의 평온
‘황광은 목사를 그리며’
세월이 흐를수록 훌륭히 가셨다는 생각만 깊어갑니다. 어언 십년 성상(星霜). 우리는 그대로 남아 늙어 가는 몸을 창파에 표류시키건만, 황 목사님은 참 잘도 사셨고 잘도 가셨습니다. 누구나 부러운 선척(배)에 몸을 싣고 목적지까지 멋지게 행선하셨습니다.
황 목사님이 가신 지 어느 덧 10년이라니 꿈만 같습니다. 봄바람 가을 비 몹쓸 세상은 미친 바람만 몰아친 10년이었습니다. 이념도 잃고 이상도 잃은 나침반 없는 세상을 역조(逆潮) 속에서 헤매었습니다. 선하신 여호와, 황 목사님을 먼저 기착시킨 크신 뜻을 이젠 알 듯합니다. 그의 선하신 뜻과 그의 선하신 마음으로는 참아낼 수 없는 세상을 우리는 계속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가을은 왔습니다. 단풍든 누런 잎들이 뜨락에 쌓입니다. 시를 좋아하던 그이, 동화를 좋아하던 그이, 그 많은 시를 지금은 어디다 발표를 합니까? 그 많은 동화를 지금은 누구에게 다 말해 줍니까?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말씀 그대로 지혜있는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심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오늘도 서쪽 하늘은 저녁에 붉고, 동쪽 하늘은 아침에 붉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가는 길은 남도 북이고 북도 남입니다. 모순이 오직 오늘을 사는 양식입니다. 그러기에 고 황 목사님이 더 그립기만 합니다.
남은 벗 안성진 드림
‘행복의 무지개’
광은은 일제 말기인 1941년과 1942년에 잠시 동안 황해도 안악에서 지낸 일이 있었다. 거기에서의 생활을 그는 뒷날 <새생명> 잡지 ‘인생 텔레비’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어렸을 적에 잉어를 한 번 잡았다 놓친 일이 있다.
황해도 안악-그러니까 일제 말엽에 안전한 지대로 피난한답시고 땅마지기나 사서 부모님을 모셔놓은 안악에 방학을 이용해서 내려갔던 19살 때였다.
지주의 아들도 아니면서 그런 대접을 받는 것도 쑥스러웠지만, 커다란 개를 통으로 삶아 놓고 먹으라고 권하는 소작인 아저씨의 호의는 감당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이윽고 논두렁으로 산책이나 하라고 해서 밖으로 나왔다. 그 지방의 특색인 물논에는 어디를 가나 무릎 아래 찰 정도의 물이 고여 있었다. 그런데 그 어느 논배미에 커다란 잉어가 한 마리 유유히 헤엄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곧 그 잉어를 덮칠 생각을 했다.
잉어를 본 적은 있어도 잡아 본 일은 없는 나다. 논배미는 한정되어 있었고, 물도 무릎 밑밖에 차지 않는다. 어째서 이런 곳에 잉어가 있느냐는 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이 잉어 위에 우선 엎어졌다.
내 가슴에 커다란 진동을 남기고 저만큼 달아나는 그 큰 잉어를 향해 제2격을 가하려고 나는 다시 일어났다. 내 옷은 온통 물에 젖었고 얼굴에도 물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엎어진 배 밑에 깔렸던 그 잉어가 흔들어 놓고 간 그 굵직한 진동이 나를 흥분할 대로 흥분하게 했다. 제2격, 제3격, 나는 야구 선수가 슬라이딩을 하듯 물논 위에서 잉어를 타고 앉고 또 놓치고를 수없이 계속했다.
그러는데 어느 사이에 논두렁에 와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던지 소작인 아저씨는 웃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잡은 거여. 저녁에 대접할 것인데, 그물을 가지고야 건질걸.”
나는 그만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잡아다 넣어둔 잉어를 또 잡느라고 애쓴 것도 우스웠지만, 온통 물에 범벅이 된 내 주제가 말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커다란 잉어가 또 통으로 내 상 위에 놓여졌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때도 그 잉어고기를 별로 먹지 않았던 생각이 난다.
행복이란 잉어잡이와 같다.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잡혀지지 않는 것이 행복인지도 모른다. 보일 듯 보일 듯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이 행복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보면 행복은 한 논배미 안에 있고 또 그것은 나를 위해 있건만, 그런 행복도 마다하고 물난리를 일으키며 엎어지고 넘어지는 잉어잡이 같은 행복의 낚시꾼들 – 그게 바로 행복의 무지개를 좇는 인생이다.
행복-복-그것은 오복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그렇게 바라고 있으면서 가지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또한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던 때보다 더 행복할 것 없는 상태, 그래서 행복을 느끼는 데서부터 출발되어야 하는가 보다.
행복은 한낱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을 뿐 결코 존재하거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메테를링크라는 사람도 있고, 안톤 체호프는 “행복이란 없습니다. 있을 까닭도 없습니다. 설사 인생에 의의나 목적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행복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아예 무지개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행복이 우리 주변이라는 논배미 안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10원짜리 행복이 있다. 외로운 거리의 소년이 만원 전차를 타는 행복이다. 10원만 주면 그들도 한 인간이 되어 밀고 제치는 인파 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냄새를 만끽하고 종점에서 내릴 수 있다.
20원짜리 행복이 있다. 20원만 내면 한 자리는 완전히 내 것으로 예약되어 종로를 꿰뚫고 한강 철교를 건너 복숭아꽃 피는 그 어느 교외 같은 종점에 내릴 수 있다.
자가용을 꼭 타야 관광은 아니다. 오히려 자가용보다 합승이, 합승보다 버스가 좀더 후끈한 인간미를 전해 준다는 건 버스에 타고 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얼굴도 험상궂은 낯모르는 청년의 짐을 안심하고 받아 안는 모습을 너무나 자주 보는 시민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행복감이다.
이것도 어렸을 적에 어떤 잡지에서 보았던 만화의 한 토막. 어느 굉장한 빌딩 앞에, 그것도 굉장한 자동차가 한 대 머물러 서더니 시종만 내려서 빌딩 안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차에까지 운반해 내오니, 이건 또 앉으신 그대로 차안에서 음식을 드는 백만장자가 있더라는 것. 가로수 그늘에서 지켜보던 배고픈 인생이, 어떤 사람이길래 팔자가 저리도 좋아 차안에까지 음식을 날라다 먹는 호강을 하는가 하고 가까이 가보니 그는 하반신이 거의 없는 불구자로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불행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서야 자기도 먹을 것만 있으면 그리 불행한 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그런 줄거리였다.
행복이란 결코 물질적인 데만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느껴지는 기분에만 있지도 않다. 어떤 이의 명상록대로 ‘참된 행복은 영혼 전체의 평온’에 있는지도 모른다.
김희보 목사
• ‘人間 황광은’ 저자
•전 장신대 학장
•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