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자들이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 문위에 ‘너 자신을 알라’고 크게 써 놓았지만 인간은 결코 스스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다. 종교개혁가 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1권 제1장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신을 아는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교훈으로 시작했다. “진실하고 건전한 지혜는 거의 전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묵상하고 그 묵상 후에 낮아져서 자신을 면밀하게 살필 때까지는 진실한 자신에 대한 지식에 도달하지 못한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대면해야만 자신에 대한 진실한 지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곧 자신을 알아가는 것으로 나타나며, 진실한 자기 발견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거나 올바르게 만나고 있지 않는 사람이다.
기도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으며 또한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알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영혼의 창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의 기도를 비유(눅18:10-14)를 들어 말씀하심으로 자신을 아는 지식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가르쳐주신다. 두 사람 모두 기도 가운데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그런데 두 사람의 자기 인식은 매우 뚜렷한 대조를 보여주며, 두 사람의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예상을 뒤엎는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받지 않으시고, 세리의 기도는 받으시고 의롭다 인정하셨다.
바리새인은 “자신에 대하여” 기도했다. 그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지만 자기에게 갇혀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창문이 없이 자신이라는 방에 갇혀 자기 자신을 향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기도에는 감사가 있으나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감사만 있을 뿐이다. 이는 자기 만족이다. 죄에 대한 회개가 없다. 오히려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이는 자기 신뢰이다. 그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간구가 없다. 이는 자기 의존이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신앙의 의무보다 더 많이 행하고 있다는 자만심과 위선이 들어있다. 이는 자기 자랑이다. 그의 기도에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했다. 그는 악을 행하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그들처럼 악을 행하지 않음을 기도했다. 반면 세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징벌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자신의 죄인됨을 철저하게 고백한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하게 구한다. 세리의 기도가 예수님께 인정받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 오직 위로만 향해’ 하나님만 바라보며 자신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평가 기준은 오직 위에 계신 하나님이어야 한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만이 우리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때 참된 자기 발견에 이를 수 있다. 우리가 세리와 같이 죄인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도 또 다른 바리새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무서운 사실이다. 스펄전은 “사람의 마음에는 마귀적인 재주가 있어서 죄의식을 가진 것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야 할 이유로 내세운다”고 했다. 마르틴 루터는 말하기를 세상에는 오로지 두 종류의 사람들만 있다고 했다.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는 죄인들”과 “자신을 죄인이라고 여기는 의인들”이다. 참된 자기 발견이 없이는 참된 구원을 경험할 수 없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다면 참된 자기 발견을 경험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발견의 중요한 통로가 되어야 한다.
이재훈 목사
<온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