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존엄한 존재다. 인간은 누구나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인간마다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성숙한 개성을 소유하지 않고 독선적 고집에 머물러 있을 때, 그것은 교만이다. 교만에 사로잡히면, 귀가 있으나 귀머거리가 된다. 개인적 교만은 개인적 손실을 자초하지만, 국가지도자의 교만은 국가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
머리나 학벌이 좋거나 소유가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자기 자랑이나 우월의식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높은 산에 올라 세상 만물을 바라보라. 과연 그런 것들이 자신을 높은 존재가치로 만드는 절대적 가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특히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의 높은 창공에서 세상을 바라보라.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은 존재로 느껴질 것이다.
진정 성공한 사람들은 머리나 학벌이 좋다고 모두 존경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니다. 지능은 뛰어나지 않고 학벌은 일류가 아니더라도 자기를 버려 남을 위하고 국가와 민족, 더 나아가 인류사회를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된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생애가 빛나고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돈이 많은 부자라고 해서 역사에 남는 존재가 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라고 하더라도 일생 동안 모으는 데만 몰입하고 다른 이에게 짜장면 한 그릇 따뜻하게 대접하는 데 인색하고, 이웃과 겨레, 인류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눈감아 버리고 자기 몫만 계속 챙긴다면, 그는 결국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로 살아가다가 의미 없이 생애가 끝나게 될 것이다.
인간 사회는 눈만 뜨면 싸운다. 황금과 권력, 이념 등 다양한 문제 때문에 싸움이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것들은 상호 연관이 되어 있지만, 특히 한반도에서는 이념을 구실로 싸움이 끊이질 않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후 분단된 나라들이 모두 통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반도만이 이념의 전선이 냉혹한 현실로 실존하고 있다. 그러면 왜 이런 이념의 전선이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남북한의 지도자들이나 동포들이 마음을 비우는 ‘겸손한 마음’만 가진다면 통일은 쉽게 현실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다. 세상에는 좌도 있고 우도 있다. 눈을 들어 삼라만상을 바라보라. 다양한 만물들이 상호 어울려 공존해 가고 있지 않은가?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 상대방의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독선이고 교만이다. 독선적 교만이 증대해 가면 미움으로 치닫는다. 미움은 마침내 적대관계를 유발한다.
인류역사를 되돌아보면,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고 있다. 물론 상식 이하의 짓을 하는 무리나 국가는 정의의 칼날을 통해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더욱이 강자가 약자를 약탈해 자기 국가의 욕망을 채우고자 제국주의적인 탐욕적 태도로 교만의 극치를 표출할 때는 세계의 정의로운 세력들은 절대로 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과 이상적인 나라는 거저 만들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고 계속 사회악을 조장하는 세력들을 방치한다면, 교만에 포로된 악의 세력들이 세상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잠언서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16:18)”고 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상대방을 늘 존중하면서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의사소통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세계 보편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적이고 순리적인 대화를 할 때, 그것을 인정하는 겸손미가 있어야 한다. 교만을 넘는 그런 겸손한 열린 사고는 개인이나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