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초조하게 하소서. 얼마 남지 않은 한 해의 시간이 살같이 빠르게 느껴져 게을렀던 마음이 급해지게 하시고 촌음을 아껴 당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불안하게 하소서. 한 달란트 받아 땅에 묻어두고 남기지 못한 종의 심정이 되어 이제라도 정신차리고 주신 은사 캐내어서 다급해진 심정으로 반 달란트라도 더 남기게 하소서.
가을에는 근심이 많게 하소서. 이대로 변화 없이 또 일년이 흘러감을 안타깝게 여기며 이제 멀리서 들리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이 다가옴을 걱정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한숨짓게 하소서. 이리도 불순종의 시간들이 많았나 돌아보며 울게 하시고, 죄악 투성이로 얼룩진 삶의 자리에서 탕자와 같은 거지 심정으로 당신께 발걸음을 옮기게 하소서.
가을에는 더 미워하게 하소서. 미워하고 증오하고 발악을 하다 지치게 하시고, 미움이 미움을 낳고 증오가 증오를 잉태하는 것을 눈으로 보게 하시고, 결국 사랑하지 않으면 평안도 없고 안식도 없고 기쁨도 없고 승리도 없음을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가을에는 더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게 하소서. 당신을 안중에 두지 않은 채 피 터지게 싸우고 욕하고 속이고 고함지르다가 목이 쉬고 기운이 다하여 자빠질 때, 하늘에서 채찍 들고 노려보시는 성난 당신의 얼굴을 보며 화들짝 놀라 가슴을 치고 회개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더 정치적으로 노랗게 물들게 하시고, 위선의 빨간 테크닉이 늘게 하시고, 부정을 합리화하는 수법이 도가 트이게 하시고, 권모술수의 입술이 침이 마르게 하시고, 명예에 사족을 못쓰게 하시고, 세상의 비난거리가 되게 하시다가, 스스로 발가벗겨진 자신을 보게 하시고, 불신 사회의 손가락이 자신을 향해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하시고, 죄인 위해 십자가에 피 흘리며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당신의 고통스런 얼굴과 연약한 음성과 피묻은 손에 충격을 받고 새사람이 되게 하소서.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하박국의 기도를 따라하게 하소서. 성 프랜시스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은혜로 가득 차 욕심을 버리게 하소서. 죽음을 앞에 둔 성도의 마음이 되게 하소서. 모든 것이 배설물이 되게 하시고 오직 당신만 소중하게 하소서. 오직 당신만 바라보게 하소서. 아멘.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