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순응과 극복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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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 목사님의 「부끄러운 A 학점보다 정직한 F학점이 낫다」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오늘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 예보를 들으면 사람들은 아침에 우산을 준비하여 집을 나선다. 일기 예보를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적어도 일기 예보만큼은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인생 예보를 하셨습니다. 일기 예보는 확률로 예보하지만, 하나님은 백 퍼센트 정확하게 예보하십니다. 하나님의 인생 예보는 창조 질서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시고, 이것들을 통해 주야와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옵니다. 봄이 지나면 여름과 가을이 차례로 옵니다. 그렇게 지나다 보면 인생의 끝이 반드시 옵니다. 이것이 인생 예보입니다. 이때 필요한 지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순응이요, 다른 하나는 극복입니다. 

순응이란 하나님의 작정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는 밤과 오는 겨울을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오는 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때 순응이 필요합니다.  

이를 잘 보여준 분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바라보는 것만 허락하셨습니다. 모세는 가나안을 위해 한 번 기도했으나, 하나님의 뜻을 안 후에는 담담히 순응해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순응의 지혜가 없으면 원망하지만, 순응의 지혜가 있으면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다윗은 시편 16편 6절에서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곳이 목동의 들판이든, 장군의 전쟁터이든, 왕궁이든 순종해 받아들였습니다. 순응의 지혜를 가지면 마지막 부르심의 순간에도 감사하게 됩니다. 

2022년이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순응의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코로나에 힘들어했고, 어떤 이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새 정부에 불만이 많았고, 어떤 이는 세상의 부조리와 갈등에 아파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환경이라고 받아들이고 순응한다면 훨씬 편해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순응의 지혜가 빌립보서 4장 11~12절에 잘 나옵니다. 「쉬운성경」으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11 내 처지가 힘들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으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2 가난을 이겨 낼 줄도 알고, 부유함을 누릴 줄도 압니다. 배부를 때나 배고플 때나, 넉넉할 때나 궁핍할 때나, 어떤 형편에 처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바울은 가난에도 순응하고, 부함에도 순응해 어떤 상황에서나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생 예보를 하신 목적은 순응하도록 하기 위함만은 아닙니다. 대비하게 하시려고 예보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준비하게 하시는 책입니다. 바로 왕에게 꿈을 꾸게 하신 이유는 다가오는 흉년에 대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바로는 꿈을 꾸었고, 요셉은 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흉년에 대비해 무수한 사람을 구원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잔과 함께 충분한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들은 준비성이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의 인생 예보를 알았다면 잘 대비해야 합니다. 밤을 막을 수는 없지만, 등불을 준비할 수는 있습니다. 겨울을 막을 수는 없지만, 두꺼운 옷을 준비할 수는 있습니다. 죽음을 막을 수는 없지만, 천국에 들어갈 믿음을 준비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교회에 다가오는 영적 겨울에 대비해야 합니다. 

2023년에도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하나님의 예보를 마음에 새기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 극복의 지혜입니다. 만약에 준비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일기 예보보다 더 믿지 않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잘 준비하면 얼마든지 극복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순응의 지혜와 극복의 지혜로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길 원합니다.

김운성 목사

<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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