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장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는 효과적인 지하철 환승이 중요하다. 누구나 휴대폰에 전철노선 안내 애플리케이션을 담고 있기에 출발역과 도착역을 찍으면 인공지능이 최단 코스를 알려주니 어려울 것 없다고 하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거미줄 같은 노선으로 A역에서 B역으로 가는 길이 반드시 하나만이 아니고 몇 가지 선택지가 있는 데다가 합한 거리와 상관없이 더 편하고 덜 편한 코스가 있음을 다녀보면 알게 된다. 우리 인생을 지하철 환승으로 비유해 보면 어떤가.
예컨대 고양시 일산 대화역에서 강남의 교대역이나 양재역 근처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은 종점역에서 승차해 신문이나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그냥 눈감고 졸든지 하며 한시간쯤 가면 목적지에 도달한다. 이런 식으로 외길 인생을 평탄하게 살다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반면에 이 길 저 길을 바꿔가며 시행착오를 겪고 성공과 실패를 맛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용산역에서 김포공항을 가야한다면 서너 가지 옵션이 발생하는데 즉, 1호선을 타고 가다가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로 환승하기, 노량진으로 내려가서 9호선 급행으로 바꿔 타고 김포공항역으로, 경의중앙선으로 홍대입구나 공덕역까지 가서 공항철도로 옮겨 타기 중 한가지를 택하게 된다. 스마트폰 앱으로는 셋 다 30-40분 소요시간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환승하는데 드는 도보이동 거리, 시간이 서로 달라 어느 쪽이 유리하다 꼭 찍을 수가 없다.
서울에 1974년 지하철 1호선 서울역-청량리 구간이 처음 개통하고 반세기가 지나면서 10여 개의 철로선이 지하에 건설되고 이것들이 서로 걸치는 지점에 환승역들이 생겨났다. 전철 선로 셋이 위아래로 교차하는 지점이 여럿이고 공덕역이나 왕십리역에는 무려 4개 선로가 통과하며 거대한 지하도시가 형성되었다. 일시에 된 것이 아니고 10년 넘는 시차들을 두고 지어졌기에 기술과 자재의 발전에 따라 외관이나 편의성이 한 역에서도 각 선로마다 많은 차이를 보인다. 9호선을 타고가다가 노량진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면 마치 다른 도시에 온 느낌이 든다.
어느 고명한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자유로이 목적지를 정하고 전철을 타지만 일단 열차에 오르고 나면 그 때부터 차를 내릴 때까지 자유를 반납한다고 했다. 아무 역에서나 빠져나올 수는 있으나 정해 놓은 목적지가 있기에 그렇게 못한다. 러시아워에 환승을 하려고 지하통로로 걷거나 뛰며 이동해 다른 열차에 간신히 올라타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는 자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직장인은 하루 평균 두시간을 전철 안에서 보내면서 생각한다. 나의 목적지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나는 누구와 경쟁하는가, 누구를,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나를 싣고 달리는 이 열차와 나를 다스리는 체제에 내 인생은 언제까지 순종해야 하는가,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자신에게 묻는다. 그 해답에 따라 환승역이 활기찬 삶의 현장이 되기도, 우울한 생존의 마당이 되기도 한다.
군중속에서 밀리며 내가 어디서 어디를 가든지 나와 동행하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인생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이다. 인생의 도정에서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환승은 승리의 길이 되고 믿음을 잃으면 환승역은 사방이 막힌 동굴일 뿐이다.
김명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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