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독일에서 공부보다도 목회를 우선으로 삼고 사역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선배가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 당시 필자는 이미 중부지역에서 어느 정도 교회가 자리를 잡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필자는 선배에게 독일 교민이 별로 없는데 교회 개척을 왜 하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생각해 보면 필자가 상당히 정의로운 모습 같지만 실제로는 위장된 정의였습니다. 필자는 유학 생활 중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목회만을 하고 있으니 내면에 시기의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박사학위를 받았으면 되었지 무슨 교회 개척을 하는가 하는 시기의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8년 후 필자 역시 미국에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미국에도 교회 수에 비해 한인이 적은데도 말입니다. 시기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이삭이 흉년을 만나 살 길이 힘들어 애굽으로 피난 가려고 하자 하나님은 그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가나안 땅에서 흉년을 견뎌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삭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머문 곳이 그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그랄 땅에서 ‘백배’의 수확을 거둡니다. 이곳에서 여러 해 동안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는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합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의 우물을 죄다 메워버렸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우물’이란 한 공동체의 생명줄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화를 내기보다 지역을 옮겨 또다시 우물을 파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또 불한당들이 몰려와 우물을 빼앗았습니다. 이삭은 이들에게 맞대어 대적하기보다는 계속 자리를 옮겨가며 우물을 팠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그들이 이삭을 인정하게 되고 찾아와 화해를 요청하게 됩니다. 이런 정신이 어디서 왔을까요? 그것은 이삭이 여호와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버지가 자신의 손발을 묶고 목에 칼을 들이대는 충격적인 경험 속에서도 이삭은 순종함으로 “여호와 이레”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경험했습니다. 또한 어딜 가든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그랄에 거할 때에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우물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삭을 기다리게 하고 싸우지 않게 하는 디아코니아의 성품으로 자라게 한 것입니다.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물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삭처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