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중략)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김소월 초혼)
초혼(招魂)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다가 죽겠다는 선언적 고백을 한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얼마나 그 사랑의 열기가 뜨거웠으면 죽음의 공포와 무서움이 가로막는 생(生)과 사(死)가 갈리는 순간까지 그 이름을 부르면서 죽겠다고 하겠는가?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끔찍하게 사랑하셔서 그 교회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바울사도는 3년동안 복음으로 양육하고 섬겼던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밀레도에 불러모은 뒤 유언적 부탁을 한다.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인가에 대한 유언적 부탁이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하나님께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자기 피로 사셨다고 하겠는가? 부부(夫婦)간의 도리와 법도에 대해 설교하면서 많이 다루는 말씀들 중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 5:25)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요 예수님께서 사랑하셔서 죽으신 교회라고 하면 하나님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얼마나 더 교회를 사랑해야하겠는가? 우리가 죽으면서까지도 불러야 할 이름이 교회가 아니겠는가? 왜 교회는 사랑의 대상인지를 살펴보자.
1. 교회는 신앙의 보금자리임으로 사랑의 대상입니다.
장로교 창시자 깔뱅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누구든지 교회를 어머니로 섬겨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세상에 소중하고 귀한 것이 많고 또 많지만 어머니만큼 많은 귀한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들에게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함의(含意)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가 없으면 이 세상에 아무도 태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존재의 근원이며 생명의 보금자리가 되기 때문에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고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어머니의 넓고 포근한 사랑의 품과 같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배우고 익히고 펼치는 신앙의 터전이자 보금자리이기에 교회는 죽을 때까지 우리가 사랑하고 섬기고 돌봐야 할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처음부터 하나님을 알고 성령님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길이요 진리라고 고백할 수 없다. 가만히 따져보면 모두다 교회에서 배운 것이다. 우리들이 어머니 무릎에 앉아서 어머니로부터 사소하고 초보적인 사물의 이치와 세상을 하나하나 배웠듯이 우리들은 모두 교회를 통해서 신앙을 배우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웠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2. 교회는 구원의 못자리이기에 사랑의 대상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6-18)
베드로가 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은 이땅의 모든 교회의 기초가 되었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은 주의 백성이 되는 첫 번째 관문인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는 신앙선포에서 시작된다고 할 때 교회는 우리들 모두에게 구원의 못자리가 되는 엄청난 은혜의 보고(寶庫)이기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3. 교회는 모두가 돌아가야 할 요람(搖籃)이기에 사랑의 대상입니다.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시대적 아픔을 신학자적인 관점과 목회자적인 관점에서 저술하고 강의하는 기독교 변증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쓴 책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라는 책을 보면 미국근본주의적 교리를 가진 엄격한 교회를 다니다가 교회에 실망하고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면서 교회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교회에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서술한 책인데 둘째 아들 탕자(蕩子)가 마침내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요람인 교회로 결국은 돌아와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만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왜 우리를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기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어렸을 적 어른들 예배 대표기도시간에 독과점 용어처럼 등장하는 말이 있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라는 말을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우리는 교회를 떠나 살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라고 바꿔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바로 교회이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고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불러야 할 사랑의 대상이 교회이기에 우리 모두가 교회를 뜨겁게 사랑해서 하늘의 복을 누리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소망해 본다.
이진구 목사
<목포성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