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이 시인 한하운(1919-1976)은 그의 시 ‘삶’에서 문둥이가 된 것은/욕辱이다. 벌이다. 문둥이다/로 한구절 표현했다. 문둥병은 1871년 한센(Hansen) 씨가 나균을 발견하여 생긴 만성 전염병이다. 한하운은 문둥병을 시에서 천벌로 표현했다. 광복 전후 문둥이들이 어린이 간이 약이 된다고 어린이를 납치해 살해한 일이 실제로 있기도 했다. 내가 서울용문고 2학년 겨울방학 때 집이 부산이어서 부산 초량천주교병원에 축농증제거 코수술울 받고 일주일 입원했던 일이 있다. 이때 입원실 환자 하나가 문둥이 이야길 해 주었다. 초량 사는 한 어머니가 귀갓길의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잃었다.
여러 날 동서남북으로 찾고 찾아도 아들의 행방은 아득했다. 동네 여인 한 분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까 우리가 미신으로 생각하는 점쟁이를 통해서도 은혜를 베푸실 수 있으니 점쟁이를 만나보라 했다. 너무 다급한 나머지 서면 점쟁이집에 들어 섰다. 점쟁이는 보자마자 당신은 속히 초량시장에 달려가 옹기점에서 독 하나를 사가는 여인을 따라가라 했다. 급히 달려와 옹기점에서 기다리다가 독 하나를 사가는 그 여인 뒤를 뒤쫓아 갔다. 우람한 큰 대문을 열고 들어 서며 대문을 쾅 닫아버린다. “여보시오” 소리 질러도 대문을 열어 주지 않아 파출소 순경 두 사람을 불러와 대문을 열었다. 이집에 내 아들 찾으러 왔다하고 그 큰 온집안을 다 뒤져도 찾는 아들은 나오지 않았다.
너무 기가 차고 억울하여 어머니는 아들 이름을 부르며 큰 부엌바닥에 퍼질러 앉아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다. 그때 모기소리만한 소리로 어머니 귀에 엄마! 소리가 들렸다. 지켜보는 두 순경 귀에도 들렸다. 소리난 곳은 부엌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장작더미 속에서 나왔다. 두 순경이 그 장작더미를 다 허물고 보니 한구석에 독이 하나 나오고 독안에 머리를 면도칼로 빡빡 다 밀고 손톱 발톱까지 다 빠진 어린이가 독안에 들어 있었다. 엄마의 울음소리를 듣고 어린이는 죽을 힘을 다하여 엄마를 불렀고 뱃속에서 키워 낳은 애지중지한 아들 그 작은 목소리를 독실한 기도의 어머니로서 듣게 된 것이다. 하나님 은혜였다. 점쟁이 말도 일단은 고맙게 느껴졌다. 아들이 발견되기까지 쥐 죽은 듯 적막한 집 마루에 문둥병 환자 남편이 나와서 자기가 애들 잡아다 약술 만들지 말라 만류했으나 문둥병에 애 간이 좋다고 저 애까지 세 번째 천벌 받을 짓을 했다면서 “다 죄는 내게 있소 내가 죄인이오 나를 잡아 가시오!” 풀죽은 말로 자기 죄를 고백했다. 남의집 귀한 어린이를 잡아다 약술을 해먹고 문둥병 치료를 하여 더 오래 살겠다는 그 생명의식이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지금은 나라가 소록도에 나환자 촌을 만들어 과학적인 고도의 의술로 문둥병 치료가 잘 되고 있다. 교회에서 예배도 드린다. 한센병 아버지로 존경받던 차윤근(1918-2008) 박사가 4.19 무렵 소록도 원장을 그만두게 될 때 한센병 치료와 권익에 애쓴 차윤근 박사를 떠나지 못하게 한센병 환자들의 시위도 있었다. 1956년도에 부산 초량 문둥병 환자가 집에서 아내가 어린애를 잡아다 약술해준 것을 먹던 악질적 치료방법은 살인적 죄악이요 천벌 받을 일이었다. 여수 애양원이 서고 1928년도 나환자는 약 600명이 되었다. 1939년도 애양원교회 2대 목사가 된 손양원(1902-1950) 목사는 나환자 돌봄 치료에 기도가 많았다. 오늘날은 문둥병이 정복되고 있다. 1956년도 문둥병 환자 약술 재료로 죽을 뻔한 아들을 찾아낸 어머니의 희생적 모성애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도의 어머니 응답을 점쟁이를 통해 응답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오직 감사할 뿐이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