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성장을 멈추고 쇠퇴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회가 사회윤리적 측면에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은 분명하다. 우선적인 해결책은 분명 교회가 도덕성을 회복하며 사회적 약자를 섬기는데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도할 때가 아니라 회개할 때이며, 사회적 정의와 약자 돌봄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충분한 대답이 아니다. 회개는 회개대로, 사회 봉사는 사회 봉사대로 해야 하며, 전도는 전도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도리어 더 선명하고 효과적인 전도가 필요한 때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교회가 지금까지 존재한 이유가 교회가 선한 일에 힘써서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사회적으로 신뢰를 잃어버릴 만한 수많은 과오와 범죄를 저질렀다. 십자군 전쟁, 종교 전쟁은 물론이고 교리적 차이만으로도 끔찍한 형벌에 처했던 교회의 어두운 역사가 존재해 왔다. 교회가 선한 일로서 역사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교회는 역사 속에서 벌써 사라져야 했다. 교회가 지금까지 존속한 것은 윤리적으로 탁월한 공동체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맡겨진 유일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는 것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변화시킬 위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시면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사람을 찾으시는 일이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선택하신 사람들은 갈릴리 어부들이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는 것이었다. 물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바꾸시는 것이다.
“옛날에 어부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주 매달마다 이들이 모여서 하는 일은 회의실에 모여서 고기잡이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보다 새롭고 효과적인 고기잡는 방법은 없는가 연구하고 토론하였다. 고기잡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새로운 정의를 내리기도 하였고 발표도 하였다.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세계적인 컨퍼런스를 개최하여 고기잡이에 대한 온갖 정보와 장비를 연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부들을 위한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지어놓고 세계 고기잡이 센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고기잡는 일을 장려하기 위해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하였으며 멀리가서 다른 색깔의 고기를 잡는 안건도 내놓고 토론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어업의 역사를 공부하기도 하고 수세기 전에 조상들이 얼마나 위대한 어장을 경영했는지를 보기 위해 멀리 외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하지 않는 일이 딱 한가지 있었다. 그것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는 일이었다.”
어부란 고기잡이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마리의 고기를 잡기 위해서라도 바다로 나가 파도와 싸우고 밤새 졸음과 싸우며 고기의 비린내를 맡으며 그물을 씻는 수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어부를 선택하신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고기를 잡는 수고를 할 수 있다면 영혼을 구원하는 수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생명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어부들이다. 한국교회는 사람 낚는 어부들이 다시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이재훈 목사
<온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