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대 말기에서 중세 초기에 등장하여 기독교 사상을 정립한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tinus)는 『신국론(De Civitas Dei)』에서 인류 역사를 신국과 지상국의 투쟁 과정으로 보고 있다. 그는 신국과 지상국의 기원을 가인(Cain)과 아벨(Abel)로 보았으며, 인간에게는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원죄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보았다. 그와 같은 원죄는 결국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죄는 지상국에서 끝없이 발동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서 투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한 서양 중세 말기의 유명한 성직자이며, 스콜라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사탄의 세력들이 공익을 해치는 경우에 이를 제거하기 위해서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스코트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녹스(John Knox)는 『스코트랜드 종요개혁사』에서 “인류 역사는 빛과 암흑의 투쟁이다”라고 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홉즈(Thomas Hobbes)는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인간은 자기 보존을 위해서는 자연권을 마음대로 행사하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모습을 나타내는 이기적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이기주의적인 세력을 제압하고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을 조정하기 위해서 국가의 강력한 역할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세상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선한 일만 추구하는 사람은 못살고 손해를 보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술수에 능한 악한 사람들이 더 잘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과연 그런 논리는 맞는 것일까? 근시안적 시각에서 볼 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멀리 바라보면, 결국 악인은 언젠가 심판을 받게 되고,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언젠가 역사의 심판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사회현상을 바라볼 때, 때때로 이런 역사의 심판을 망각하고 악한 사람들이 더 잘살고 악한 사람들이 더 출세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과 말 바꾸기를 다반사로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탐욕의 노예가 되어 옳고 그릇된 가치 기준을 상실한 비이성적 행동이다.
악의 세력들은 틈만 있으면, 이 세상을 어둠의 골짜기로 몰아넣으려고 넘보면서 때로는 무법자로 활개를 치면서 날뛴다. 만일 우리들이 악의 세력들이 활개치는 것을 침묵하거나 방관한다면, 이 세상은 점점 더 어두운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양화(良貨)가 악화(惡貨) 때문에 축출당하는 것을 결코 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들이 악의 세력들을 방관할수록 이 세상은 그만큼 빛을 잃고 어두워져 갈 것이다. 그런 세상이 되면 어둠의 세력들이 이 세상의 주인공(主人公)이 될 것이다. 인류 역사는 선을 추구하는 세력과 악을 추구하는 세력 간의 투쟁 과정이며,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와의 투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거짓과 불의는 어둠의 자식들이 추구하는 세계요, 진실과 정의는 빛을 추구하는 자들의 세계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성령과 악령을 추구하는 세력들의 모습으로 보고 있다.(갈 5:22~23)
우리 사회에서 매일 같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크고 작은 악의 세력들을 국가가 모두 제거해 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둠을 추구하는 악의 세력들이 빛의 세상을 넘어뜨리지 못하도록 국민 모두가 ‘주인의식(主人意識)’을 가지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그런 어둠의 세력들을 제거하려고 부단히 노력할 때, 어둠의 세상은 줄어들어 가고 진실과 정의가 빛을 발하는 밝은 세상이 확대되어 갈 것이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