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해마다 8월이 주는 우리의 교훈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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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애국가를 지은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본은 자기 힘에 지나치는 큰 전쟁을 시작하였으니 필경 이 전쟁으로 인하여 패망한다. 아무런 곤란이 있더라도 인내하라” 나라 잃은 겨레에게 희망의 격려 말씀을 주셨다. 이태리 독일이 이미 항복 했으나 일본은 끝까지 2차대전 전쟁을 악랄하게 버티었다. 어느해 아들이 목회하는 사이판에 갔다가 그 옆에 있는 티니안섬 일본공군본부가 있었던 넓은 비행장을 보았다. 미국은 여기서 비(B)29 비행기에 원자탄을 싣고 날아가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던졌다. 엄청난 인명 피해에 겁먹은 일본왕은 무조건 항복했다. 드디어 우리 선혈의 독립투쟁과 연합국의 승리로 하나님은 우리나라에 광복을 주시고 이어 대한민국 독립국가의 영광을 주셨다. 

올해 78주년을 맞은 광복절은 1910년 8월 29일의 경술국치가 없었다면 있을 수 있는 국경일이 아니다. 해마다 광복절 행사는 뜻깊게 열면서 뒤이어 오는 경술국치일은 까맣게 잊고 지나간다. 이스라엘 헤르체르산에 있는 국군묘지 기념관 큰 동판에는 “과거를 망각한다는 것은 또다시 나라를 잃게 만드는 것이요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곧 구원의 비결이다”라고 새겨놓았다. 망각=망국 기억=구원이라는 이 등식이 나라 잃고 방황하던 민족이 다시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독립국 이스라엘을 재건했다. 국군묘지 전시관에서 나치 독일의 학대를 설명하는 부모가 눈물을 흘리며 치욕의 역사를 설명할 때 듣는 자녀들도 눈물을 흘리며 듣는다고 한다. 일본은 1895년 고종 32년 10월 8일 경복궁 옥호루에서 민비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경술국치 걸림돌되는 민비부터 살해한 일본은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 승리로 대외적 힘을 얻고 한국을 차지하는 우선권을 가졌다. 

일본은 2차에 걸쳐 영·일동맹(1902, 1905) 카쓰라·태프트밀약(1905)을 맺고 러시아와 일본사이 우선권을 갖는 포츠머드조약(1905)을 맺었다. 1904년 2월 23일에 한일의정서를 체결하고 한국 군사요지에 일본군을 주둔하며 외교권 재정권 교통기관 통신기관까지 장악했다. 외무대신 서리 윤치호와 하야시 일본공사가 체결한 제1차 한일 의정서가 내정간섭의 고문정치를 이루었다. 이어 을사늑약(1905), 정미칠조약(1907), 군대해산(1907), 기유각서(1909), 경찰권 이양(1910)의 정치적 뒤장치를 다한 일본은 각본대로 융희 4년(1910) 8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통감 자작 사내정의(3대 통감 데라우치)가 한일합병조약 체결에 성공했다. 민란을 눈치보던 일본은 얼빠진 순종의 칙유문으로 8조의 한일합방 문서를 1910년 8월 29일에 발표했다. 순종은 매국노 이완용에게 대훈장을 주고 대신 궁녀들에게 훈장잔치를 베풀었다. 경술국치일 참으로 나라나 겨레가 부끄러운 날이다.

해마다 8월이 오면 광복절에만 경축하지 말고 경술국치도 상기하여 더욱 나라겨레 사랑하는 애국심 솟는 날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일본은 군국주의 망상에 젖어 있고 신사참배하며 독도 영유권 주장, 역사교과서를 예사로 왜곡하고 있다. 일본은 과거 만행에 회개가 없으나 독일은 나치 독일을 참회하고 있다. 우리는 8월의 경술국치일을 거울 삼아 한글깃발 휘날리는 오늘의 세계에서 경제 10위, 군사 6위 강국의 나라 힘을 더욱 크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경술국치일을 상기하여 기도하며 통일염원도 이루고 세계 으뜸으로 잘사는 주님 축복의 나라를 이루자.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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