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전해지는 뉴스를 접하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통치에 대적하는 행태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폭력과 불신과 증오와 갈등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온갖 범죄와 전쟁의 소식이 공포에 떨게 한다. 힘으로 악한 세력에 대항해서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이니 우리는 기도한다. 세상은 교회를 향해 점점 냉소를 보내고 있다. 교회는 권력과 부 그리고 정치적 영향력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권력과 교회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밀접하면 교회는 부패하기 쉽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 준다. 선거 때는 목사님이 노골적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설교 시간을 통하여 특정 후보 지지를 주장, 지지를 종용(慫慂)한다. 개탄할 일이다. 교회와 권력이 야합하면 교회는 반드시 갈등과 분열이 발생한다.
칼 바르트(K Barth)는 “기도하기 위해 두 손을 모으는 행위야말로 무질서한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일어서는 출발점”이라고 했다. 루마니아는 1947년 공산인민공화국으로 수립되었다. 차우세스크(N Ceausescu,1918~1989)는 공산당에서 활동하다가 1965년 집권, 독재자가 되어 무자비하게 통치했다. 1989년 12월 25일 그의 부부는 총살형을 받고 27일 집행되었다. 그의 변호사마저 변호를 거부했다. 1980년대 초, 독재 권력의 인권 탄압이 한참일 때 차별 받는 동족들을 보살피기 위해 라스즐로 토케스(Laszlo Tokes) 목사가 루마니아의 조그마한 마을 티미소아라(Timisoara) 교회에 부임했다. 전임(前任) 목사는 공산주의 정부를 지지했다. 이와는 달리 토케스 목사는 정부의 불의와 인권 탄압을 비난하며 저항했다. 주일마다 예배당 안에 교인들이 밀물처럼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임 당시 40명이었던 교인이 5천 명으로 늘어났다. 토케스 목사는 정보 요원들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독재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하던 경찰관들이 체포하기 위해 교회 안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수 백 명의 교인들이 목사의 사택(舍宅)을 에워쌌다. 촛불을 들고 찬송가를 불렀다. 경찰은 토케스 목사를 체포하러 들어갔다. 시위대는 동요하지 않았다. 경찰서를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군중의 숫자가 20여만 명으로 늘어났다. 군 병력이 동원되어 진압하려고 발포(發砲)를 했다. 100여 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불구하고 군중들은 해산하기를 거부했다. 토케스 목사가 연단에 올랐다. “기도합시다.” 수많은 시민들은 무릎을 꿇었다. ‘주기도문’을 드리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단합된 불복종 운동이 시작되었다. 저항의 함성(喊聲)은 수도 부쿠레슈티로 옮겨갔다. 얼마 뒤 루마니아를 철권(鐵拳)으로 통치하던 차우세스크 폭압 정부가 와해, 붕괴되었다. “우리는 루마니아 역사를 피로 물들인 소름끼치는 독재자를 제거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행복해지자.”
폴란드 공산 정권은 고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열렬히 환영하면서 저항 운동이 시작되어 공산 정권을 무너뜨렸다. 폴란드 자유 노조가 항거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동독은 1982년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칼을 쳐서 쟁기로’ 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했다. 바흐(Bach)가 감동적인 연주를 했던 적이 있는 역사적인 교회였다. 1만, 9만…,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라이프치히 시민들이 참가했다. 베를린에 이르자 50여만 명으로 불어났다. 철의 장막을 상징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 드디어 통일을 이루어 냈다. 레닌과 스탈린 그리고 마르크스의 동상들은 한때 신(神)처럼 떠받들어졌지만 지금은 공터에 흉물로 버려져 있다.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사 11:4)이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기도, 찬양은 악의 세상을 이기고도 남는다.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시 140:12)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수필문학가 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