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한 고등학교에서 자살예방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강당에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하는 강연이었다. 고등학생 700명을 대상으로 하는 자살예방교육은 녹록지 않았다. 정말 진땀을 빼며 2시간 강의를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교무실에 들어갔는데 선생님이 한 학생을 데려왔다.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었다. 첫 눈에 볼 때 여리여리한 모양새였다. 그 친구가 내놓은 첫 말이 ‘아빠가 작년에 자살했어요’였다. 말이 작년이지 6개월 전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했다. 그리고 가정이 깨어지고 누나는 엄마를 좇아갔고, 자기는 아빠를 좇아갔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아빠와 단둘이 단칸방에서 살았다. 그런데 3개월 쯤 지나서 아빠가 죽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죽으면 엄마에게 가라고 했다. 말리고 말렸는데, 두달 여 듣다 보니 짜증이 나서 ‘알았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 갔다오니 아빠가 죽어 있었다. 이 친구가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까지 치렀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이 친구는 울음을 참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울음을 참느라 꼭 쥔 주먹을 떨고 있었다. 그런데 끝내 울지 않았다. 나도 아이가 선생님들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려는가 해서 손을 잡지도, 안아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아이가 말한다. ‘내가 무너지면 엄마랑 누나가 어떻게 될지 몰라요.’ 고등학교 1학년 아이가 한 이야기이다. 자신도 힘들지만 엄마와 누나가 또 자살하게 될까봐, 자신은 울 여유도 없다. 유가족들은 보통 이러한 긴장 가운데 산다. 누가 또 뒤를 이어서 자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이 친구도 그러한 두려움이 있어서 울지도 못한 것이다. 이렇게 슬프고 어려우면 울어야 마음이 풀어질 텐데 그러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친구가 하는 이야기가 ‘아빠가 왜 죽었는지 이제 알 거 같아요’였다. 보통 가족 중에 누군가 자살하면, 그 이야기는 ‘공개된 비밀’이 된다. 자살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지만, 서로에게 너무 큰 상처이기에 입에 올리지를 못한다. 그래서 자살이 일어나면 가족들은 모두 알고 있지만, 마치 모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아마 이 친구의 집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이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지만, 모두가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하고 살았던 것 같다.
함께 살았던 이 친구는 의문이 풀리지 않아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하는 강연을 듣고는 중년 남성들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자기 아빠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야 아빠의 죽음에 대한 오해를 푼 것이다.
그리고 이 친구가 내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 같은 아이들이 많을 거에요. 교수님 많은 곳에서 이야기해 주세요’ 자기처럼 자살유가족이라는 굴레를 가지고 숨죽이며 살고 있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 아이들도 자신처럼 이해를 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살하면 보통 10대의 성적이나 왕따, 또는 20대의 실연이나 구직 등을 이유로 하는 것이 생각난다. 그런데 실제로 자살을 제일 많이 하는 연령대는 50대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40대이다. 특히 이 나이에 이르면 남자가 여자보다 자살사망자가 3배가량 많다. 결국 우리나라의 자살율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40, 50대의 남자들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나이대의 남자들에게 관심을 더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자살로부터 자유로운 연령대나 사람은 없었다. 이들의 자살이 있으면, 그 자녀들은 10대와 20대이고, 부모는 70대와 80대이고, 그 부인이 있고, 형제와 자매가 있다. 그러면 그 누구도 이 죽음의 행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자살사망자는 1만 3천여 명이다. 하루에 37명이 자살하고 있다. 자살은 우리나라에서 사망원인 5위에 있다. 1위가 암이고, 2위는 심장질환, 3위는 폐렴, 4위는 뇌혈관질환이다. 그리고 자살이 5위에 있다. 이 밑으로 당뇨병, 알츠하이머, 간질환 등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비정상이다. 병이나 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다는 자살로 인해서 죽는 사람이 더 많다. 아마 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WHO 통계를 살펴보았는데 자살이 사망원인 10위 안에 드는 나라를 찾아볼 수 없다. 대한민국은 정말 이상한 나라가 맞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할 일이 분명 있다. 생명의 가치를 세우고,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다. 교회가 생명살림의 센터가 되고, 모든 교인들이 생명지킴이가 된다면 분명 이 사회의 자살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없어질 것이다. 9월 10일 생명보듬주일을 맞아 생명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교회가 이 일에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
조성돈 교수
<실천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