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 주일, 온 개혁교회는 종교개혁기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개혁 운동을 기념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을까요? 뭐 학문적인 것을 말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과연 개혁교회의 그 정신이 이어져 가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마치 세상에서 그렇듯이 기념식은 매년 하는데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념식은 어느새 연례행사가 되어 누가 참석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했다 하는 것에만 온통 관심이 가 있습니다. 어쩌다가 법 규정 한두 개 고친 거로 대단한 개혁을 했다고 자랑스러워 합니다. 말들은 정말 뭔가 일어날 듯이, 변화가 뒤따라 올 듯이 합니다. 멋지게 말들을 합니다. 그런데?
나 혼자 중얼거림입니다. 기념식, 기념 예배는 그만합시다. 기념식이 없어도, 기념 예배가 없어도 그 정신과 용기는 실천되고 이어갈 수 있습니다. 개혁을 논하자면 좌파든 우파든 강경파들의 전유물처럼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압니다. 그들이 그들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변화, 개혁을 할 수 있는 자리에 가면 다들 흐지부지한다는 것, 겨우 생색이나 낸다는 걸, 잘 압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개혁은 그렇게 관료적으로, 거대하게, 보여주기식으로, 기념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캠페인을 통해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하나 하나,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변화되어 갈 때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런 시가 있지 않습니까?
“나하나 꽃피어 /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 말하지 말라 // 네가 꽃피우고 나도 꽃피우면 / 결국 풀밭이 온통 /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 나하나 물들어 /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 말하지 말아라 //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 결국 온 산이 활활 / 타 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조병화 시인의 시입니다. 그렇습니다. 변화는, 개혁은 하나 하나가 변화되고 개혁될 때 온전히 이루어지는 겁니다. 떠벌리는 개혁은 행사로 그치고 말 겁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 변화,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결단하고 살아갈 때 개혁은 이루어질 겁니다.
멋진 종교개혁 기념 예배를 의지하지 말고, 훌륭한 종교개혁 세미나를 내세우지 말고, 나 하나 먼저 정말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되고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럴듯한 개혁 슬로건 안 내걸어도 됩니다. 나부터 그렇게 하면 되고 나부터 속에서 그렇게 변화되면 됩니다. 묻고 또 묻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성령의 감동에 순종, 결단하며 삽시다. 진정한 종교개혁, 교회 개혁이 될 겁니다.
양의섭 목사
<왕십리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