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피해자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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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침략과 함께 시작된 우리나라 근대사는 불행한 사건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우리는 7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경제적으로는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였고 민주화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로 세계를 매혹시키는 문화 대국이 되었다. 오늘날 단군 이래 최대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정치만큼은 조선 시대 당쟁을 연상케 할 정도로 극심한 반목과 대결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장관에게 국회의원이 어린놈이라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쓰는가 하면, 야당 국회의원이 국회를 방문한 대통령 면전에서 물러나라는 말을 내뱉는 몰상식이 난무하고 있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최고의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기는커녕 상대를 조롱하고 막말하는 폭거를 공개적으로 거리낌 없이 행하는 것은 상대방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증오와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근대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한 불행한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주었다. 해방 직후 극심한 좌우 대립과정에서 일어난 제주4.3사건과 여수·순천사건의 희생자들은 아직도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1950년 한반도를 전쟁의 참화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는 수많은 지식인과 민중들을 탄압하였고, 1980년에 일어난 광주사태의 희생자는 호남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광우병사태, 천안함폭침, 세월호침몰, 이태원참사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불행한 사건의 희생자들은 아직도 실체가 불분명한 가해자를 향한 분노와 증오를 풀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치가 적대감으로 극한 대립을 하는 것은 아직도 불행한 근대사의 그늘서 피해자 의식을 극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가 지난 지 벌써 70여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는 아직도 친일파 척결을 외치고 있는 정치인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 때 친일했던 사람들은 모두 고인이 되었음에도 친일의 정신이 기득권 세력에게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에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 보수정치인은 모두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과거사에 사로잡혀 현 국제정세에서 일본과 어떤 관계를 정립해야 하는지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민주화 투쟁에 참여했던 정치인들은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하고 비판할 뿐,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을 닦았고, 박정희 대통령의 선견지명이 오늘의 번영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분노와 원한으로 가득 차서 과거의 굴레에 얽매어 창조적으로 미래를 열지 못하는 퇴영적인 정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창세기의 요셉은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극복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창조적인 삶을 보여준다.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을 용서하면서 요셉은 이렇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시려 하셨으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증오와 피해자의 정치학은 가장 파멸적이고 위험한 정치학이다. 하루빨리 우리 정치가 피해자 정치학에서 벗어나 용서와 미래지향적인 정치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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