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발언대] 사도적 공동체 회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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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이며 사도적 공동체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생활환경의 여건상 개인주의 경건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태반이며 공동체로서 경건훈련을 하는 곳은 보기 힘들다. 더군다나 코로나 팬데믹이후 공동체 보다는 개교회적인 개인적인 모습들이 두드러 지고 있다.

개인주의 경건생활은 기도로서 살펴보자면 자기 감성적인 기도가 나올수도 있고, 자기 중심적인 찬양을 드리기 쉽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발생된 유튜브로 편한 복장으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들이 발생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개인 중심적 경건생활을 하다보면 주님이 원하시는 경건에 이르기가 쉽지 않다. 

공동체적인 믿음생활로 인해서 다 같은 믿음이 아닌 서로 다른 믿음의 경건이 모여서 한 믿음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 자신이 주님을 믿음으로서 그 경건이란 것이 자신의 능력을 강화 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된 생각이다. 내 안에 있는 주님을 의식하며 더불어 사는 삶이 곧 경건인데 자신을 발전시키는 노력이 가미된 현상들을 볼 수 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대부분이 공동체가 아닌 개인주의 경건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의 우리 가정들을 살펴보면 새해때 마다 가정예배를 잘 드리자고 다짐을 하면서도 내 기준과 삶의 환경에 좌우되며 작심삼일의 실패의 연속이다. 천국에 소망을 두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확신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좀 불안한 것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경건생활을 한다면서 죄와 타협을 하며 죄에 동화된 내 모습에 놀랄 때가 많이 있다. 말씀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에 와 닿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보지만 세상의 삶 앞에서 무너진 자신을 발견한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집회에 가면 열광의 도가니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만 은혜를 받고서는 실질적인 생활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죄와 타협하는 생활을 한다. 

왜 이럴까? 언제는 금방이라도 성령이 불의 혀처럼 갈라지지는 것들처럼 찬양을 하며 소리 높여 열정적인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사회에 들어가면 왜 식어져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지 못할까? 

초대교회의 공동체 경건생활을 할 여건이 되지 않더라도 경건의 훈련으로 금생과 내생에 약속을 받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대원 장로

<서울북노회 전회장, 번동평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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