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부 16강 「브라질」전을 중심으로-
나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심심풀이삼아 탁구를 치던 것을 시작으로 훗날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15, 6년간 탁구가 좋아서 여가가 있을 때마다 학교 탁구장이나 아니면 동네 탁구장에 가서 땀을 흘리곤 하였다. 조금 민망한 이야기이지만 영어선생의 가방 속에 영어책이나 영어사전은 없었고 ‘탁구 빠따(?)’는 항상 챙겨 들고 다녔으며 심지어 미국에 공부하러 갈 때도 손에 익은 탁구채를 짐 속에 넣고 갔으니 이쯤 되면 못 말리는 ‘탁구애호가’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은 옛 향수(鄕愁)를 달래기 위해 탁구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우리나라 부산에서 2024년 2월 16일부터 25일까지 열흘 동안 열렸다. 이번 대회는 한국탁구 10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대회라고 한다. 경기는 남자부와 여자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경기내용이 아기자기한 일련의 여자부 경기를 관전하면서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기였던 16강전 브라질과의 경기를 중심으로 관전기(觀戰記)를 전해드리고자 한다.
경기의 승리는 5전 3선승(先勝)으로 진행되어서 5경기를 위한 최소한의 선수는 3명이므로 각국은 선수를 3명씩 선발했는데 한국선수로는 「신유빈(세계랭킹 8위)」, 「전지희(21위)」, 그리고 「이시온(44위)」 등 세 선수였고 브라질을 대표하는 세 선수는 「브루나 다카하시(22위)」, 「줄리아 다카하시(86위)」, 그리고 「브루나 알렉스(227위)」 등 세 선수였다.
「신유빈」은 다섯 살 때부터 탁구를 시작하여 탁구신동으로 불렸으며 초등학교시절 대학생 언니선수들을 가볍게 물리친 기록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전지희」 선수는 중국출신으로 중국 탁구의 유망주였으나 중국에서는 대표선수로의 선발이 어려워지자 한국 탁구계 인사의 중재로 한국으로 귀화한 선수이며 31세의 맏언니로서 「신유빈(19세)」과는 띠 동갑이 된다. 지난해(2023)에는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전지희-신유빈」 조(組)가 결승전에서 북한 팀을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한 바가 있다.
브라질 대표선수 중에는 「다카하시」라는 성(姓)을 가진 선수가 두 명인데 이들은 자매로서 「브루나 다카하시」가 언니이고 「줄리아 다카하시」가 동생이다. 두 자매의 아버지가 일본인이라고 한다. 브라질의 세 번째 선수 「브루나 알렉스」는 오른팔이 없고 왼팔 하나만을 가진 장애인이었는데 경기에는 크게 패하였으나 시종 진지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선수로서 귀감이 되었다.
제1경기는 「언니-다카하시」와 「신유빈」의 경기였는데 일진일퇴(一進一退)를 거듭하다가 결국 한국이 2:3으로 석패(惜敗)하였다. 제2경기는 「동생-다카하시」와 「전지희」의 경기였는데 「전지희」는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미로 「동생-다카하시」에 3:0으로 완승하였다. 제3경기는 「이시온」이 왼쪽 팔 하나만으로 경기를 하는 「브루나 알렉스」를 3:0으로 승리하여 한국이 2:1로 앞서나갔다. 제4경기에서 한국 팀의 맏언니 「전지희」가 「신유빈」을 이긴 「언니-다카하시」를 상대로 세트스코어 3:0으로 가볍게 승리함으로써 「신유빈」의 패배를 설욕(雪辱)함과 동시에 대한민국이 브라질을 꺾고 8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8강전은 세계랭킹 1, 2, 3위를 독점하고 있는 중국 선수들과의 경기였는데 예상했던 대로 세트스코어 0:3으로 패하였다. 제1경기는 세계랭킹 1위 「순잉샤(Sun Yingsha)」와 「이시온」, 제2경기는 세계3위 「첸멩(Chen Meng)」과 「전지희」, 제3경기는 세계2위 「왕이디(Wang Yidi)」와 「신유빈」의 경기에서 각각 세트스코어 0:3으로 패하였다. 「전지희」와 「신유빈」이 마지막 세트에서 9:11과 10:12로 대등한 경기를 벌였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경기가 끝나고도 브라질의 「알렉스」 선수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여성으로서 충격적인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시종 환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경기에 임하던 모습과 경기에 0:3으로 패하고서도 승자인 「이시온」에게 미소 지으며 먼저 손을 내미는 모습이 돋보였다. 그녀에게서 넉넉한 인품과 착한 인성(人性)을 보게 된 것은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브라질 대표선수로서의 「알렉스」는 우리에게 또 다른 귀한 인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