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매주 안식일 유대교 회당에서 토라(모세오경)를 읽고 강론한다고 한다. 토라 본문을 52개의 파라샤(parasha)로 나누고 매년 매 주일 해당하는 파라샤를 반복해서 읽는다. 각 파라샤에는 첫 구절 중 하나 혹은 두 구절을 따서 제목을 붙였다. 예를 들어 첫 파라샤는 ‘태초에’라는 뜻을 갖는 베레시트(bereshit)의 제목 아래 창세기 1장 1절에서 6장 8절의 본문으로 되어 있고, 12번째 파라샤는 창세기 47장 28절에서 50장 26절을 본문으로 바예히(vayehi), ‘그리고 그가 살았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마지막 파라샤는 신명기 33장 1절에서 34장 12절로 베조트 하베라카(vzot haberachah), ‘그리고 이것이 축복이다’가 된다.
영국 유대교의 최고 랍비를 역임했던 조너선 색스(1947-2021)가 저술한 다섯 권의 매주 오경 읽기가 우리말로 번역되어있는데 이 책들을 보면 유대인들이 어떻게 모세오경을 중요시하고 공부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중 한 책의 서문에서 색스는 모세오경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영국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와의 대화 중에 대주교가 유대인들도 매년 성경 읽기를 실천하고 있느냐고 한 질문에 대해, 랍비 색스는 물론이지만 단 ‘읽기’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색스가 말하기를, “우리는 성경을 단순히 읽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고, 논쟁하고 질문하고, 토론합니다. ‘읽기’라는 단어는 우리가 토라를 공부하는 방식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이 어떻게 적극적이고 실천적으로 성경을 대하는지 여기에 잘 나타나 있다. 말라기 시대까지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선포하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했다. 그런데 말라기 이후 예언자의 시대가 끝난 후에는 더 이상 이런 방법으로 성경을 읽을 수 없으므로 개발한 기법이 미드라시(midrash)의 방법이라고 한다.
미드라시는 본문이 쓰여질 당시 어떤 의미였는가 라고 묻지 않고, 오히려 지금 여기 나에게 그 본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묻는 것이라고 한다. 미드라시에는 신앙의 세 가지의 기본원칙이 있는데, 첫째, 토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이 시간을 초월하시는 것처럼 그분의 말씀도 시간을 초월한다. 하나님은 수천 년 전에 전하신 말씀으로 지금 오늘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둘째,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언약이 바벨론 포로기, 로마제국의 멸망, 이천 년에 걸친 디아스포라와 나치의 홀로코스트 대학살에서도 살아남았다. 토라는 그 언약의 텍스트로서 여전히 구속력을 가진다. 셋째, 토라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원칙은 수천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더 이상 레위기에서 설명하는 성전과 희생 제사는 존재하지 않고, 이방 민족과의 전쟁과 살육은 없지만, 그러나 토라의 근간이 되는 가치는 21세기에도 우리 현대인의 삶에 적용된다.
그래서 색스는 말한다. “토라는 삶에 대한 주석이고, 삶은 토라에 대한 주석이다. 그들은 함께 대화하고 서로에게 빛을 비춰준다. 토라는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책이다. 삶의 광야를 헤쳐갈 용기와 지혜를 주는 것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길을 알려주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도 성경을 읽으면서 삶을 통해서 성경의 주석을 써 내려간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김완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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