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22대 총선에서 300명의 국회의원이 뽑힌다. 국민 즉 유권자의 첫째 관심은 여당과 야당의 의석배분이 어떻게 될 것인가이지만 우리 교회 다니는 사람들로서는 기독교인이 몇 사람이나 새 국회에 들어가게 될까 많이 궁금하다.
통계청이 집계한 종교현황에 기독교+천주교 인구가 31퍼센트라고 하니 대략 같은 비율이 국회 의석에도 나타나겠지만 그보다 높을 수도, 또 낮을 수도 있겠다.
근대화 이후 오랫동안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땅에서 더 양심적이고 더 도덕적으로 살면서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자부해 왔다.
수많은 교회들이 빈민과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는데 개인적인 선행의 주인공들 가운데도 크리스천이 압도적이다. 반면에 범죄를 저지르거나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된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현저히 낮다.
삼일운동 33인 민족대표 가운데 기독교인이 절대다수를 점했고 대한민국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이승만 임시의장의 제의로 목사인 이윤영 의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라를 위한 기도를 했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기독교 배경이 공화국 초기 정부운영에 보이지 않는 기초를 닦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개화기 미주와 유럽 출신 기독교 선교사들의 교육활동은 우리 국민의 지적자산 형성에 크게 기여했고 6.25전란을 겪으면서 기독교국가인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지원이 독립국권의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더듬어 보건대 기독교 교회는 유년주일학교부터 초․중․고․대학부 그리고 남․여전도회 등의 조직을 통해 이웃 즉 사회를 위한 봉사의 훈련과정을 제공해왔다.
각급학교 동창회나 여러가지 친목단체들에서 기독교인 구성원들이 대체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교회에서 봉사훈련을 받아 솔선하여 어려운 책임을 도맡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속한 대학동기동창회를 예로 들면 나이가 들수록 멤버들이 회장 등 임원직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는 중에 신우회 회원들이 그런 직분을 흔연히 수행하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기독교인이 국가사회의 지도적 역할을 더 많이 담당하는 것이 필요하고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나니 내가 진정 객관적인 입장에서 우리사회 기독교인의 위상을 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솟는다. 과거에 국민적인 존경을 받았던 목사님, 장로님의 이름들이 떠오를 때 이에 필적할 인물이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있는가, 이 나라에서 지금 ‘한국교회’라는 네 글자가 어떻게 일반 국민들의 귀에 들리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가슴을 누른다.
코로나 역병이 우리나라를 덮쳤을 때 정부의 방역조치를 따르지 않았던 특이한 교회가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돈 문제나 성추문을 일으키는 이런 저런 교회들을 비기독교인들이 보통, 정통 크리스천과 구분하는 안목이 있을까? 교회 세습 사안에는 원칙론과 현실주의가 과감하고 대범하게 타협하는데 담임목사 은퇴나 청빙에 관련해서는 어찌하여 그토록 많은 쟁송사건이 총회 재판국과 사회법정에 쌓이는가?
그러나 보라, 빛은 어둠을 물리치지만 어둠은 빛을 가리지 못한다.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교회, 좋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교회가 있으면 사람들은 다시 교회로 모이고 교회는 또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하게 된다.
교회 다니는 국회의원들이 다 훌륭한 의정활동을 하면 대한민국은 좋은 나라가 된다.
김명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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