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동하는 이들에 대한 존중 일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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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마지막 주일 4월 28일은 1959년 제44회 총회에서 제정한 노동주일이다. 총회에서 노동주일을 제정한 까닭은 노동의 신성함과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존중을 일깨워 노동하는 모든 이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노동을 통해 자기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일구어 가며 또한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노동에 관한 그리스도인들의 이와 같은 신앙 고백적 통찰이 무색하게도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창조와 구원 그리고 만물을 일치와 조화로 이끌어 가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현실적인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노동과 관련지어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현실적인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노동에서 신적인 거룩함을 제거해 버렸다.

노동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사역에 참여하는 통로로서 인간의 육체와 영혼 존재와 삶을 거룩한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행위였다. 그러나 신성함이 제거된 노동은 인간의 존재와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가능한 피해야 할 저주스런 운명으로 폄하되고 말았다. 그 결과 인간의 노동은 더 이상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는 거룩한 행위가 되지 못하고 다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오늘 우리사회에서 교회가 노동주일을 제정하고 예배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은 단지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보전해 주기 위한 종교적 정당화의 수단으로 오해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사회 전체를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어 가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노동자들을 필요할 때만 쓰고 아무 때나 버릴 수 있는 물건처럼 취급할 수 있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논리, 노동에 등급을 매길 수 있으며 등급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 하는 논리, 그런 차별에 따라 비정규직으로 분류된 이들에게 온갖 위험을 전가시킬 수 있다는 비인간적 논리가 마치 냉철하고 합리적인 논리인 것처럼 횡행하는 것의 근본적 까닭은 노동자의 권리와 생명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불평등이 심화되어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은 방치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노동은 첫째로 창조와 종말의 전 과정을 선으로 이끌어 가시며 피조세계 속에 거주하며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을 돌보시며 그들의 생명을 완성에 이르기까지 견인해 가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노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둘째로 인간과 역사를 구원으로 이끌어 가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마저 불사하신 그리스도의 헌신을 노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셋째로 인간의 모든 영적인 활동과 육체적 활동을 분열과 대립이 아닌 일치와 조화로 이끌어 가시며 인간의 모든 활동에 신적인 거룩함을 부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또한 노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넷째로 인간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통로 역시 노동이며 그런 까닭에 노동은 인간의 의무인 동시에 권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부디 한국의 모든 교회가 노동주일을 기억하여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사회가 인간의 모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노동하는 모든 이들이 스스로의 노동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노동이 불가피한 생계수단에 국한되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사역에 동참하는 통로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의 중요한 선교적 사명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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