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두 개의 참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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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데 가셨나요?”

순모는 빈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물었다. 비가 오는 날만 빼놓고는 바람이 부나 해가 쪼이거나 상관없이 언제나 노상에 나란히 앉아서 장사를 하고 있던 세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말을 한 것이다.

“아들네 집에 갔어요.”

“아아 그래서 안 보이시는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니에요. 언제나 보이던 분이 갑자기 안 보이셔서 혹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게 아닌가 해서요.”

순모는 발을 옮기면서 웃음이 나왔다. 아들네 집에 갔다는데 어찌도 그리 흐뭇한지 자꾸만 웃음이 입가로 흘러 넘치는 것이다.

어느 해 겨울인가 하루는 팔았던 라이터가 불량품이라며 가다 말고 되돌아온 손님이 몹시도 거칠게 닦아세우는 것을 보았었다.

“미안합니다. 좋은 것으로 골라 가십시오. 대단히 미안합니다.”

“장사를 하시려면 좀 제대로 된 물건을 갖다놓고 파세요!”

“네네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지켜보던 순모는 참을 수가 없었다.

“주인께서 미안하다 하시지 않습니까. 그런게 들어있는 줄을 모르시고 파셨는데 그쯤 하시고 성한 것으로 가지고 가시도록 하세요.”

나이로 봐서 20세 정도는 아래인 40대 남자에게 순모는 알아듣도록 타일렀다.

“댁에선 상관하지 마세요. 물건은 이분에게서 산 겁니다.”

아니 이런 괘씸한 놈이 있나. 아들뻘 밖에 안 되는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들다니… 몹시도 마음이 상했다.

“상관이 없다니! 주인께서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그러면 됐지 뭘 이렇구 저렇구 말이 많아!”

“아니 이 사람이?”

“뭘? 이 사람이라구?”

순모는 자신도 모르게 가방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섰다.

“이 사람이라니? 도대체 몇 살인데 이 사람 저 사람 하는 거야?”

“몇 살이면 어쩔거요?”

사태가 이쯤 되자 라이터 주인은 황급히 500원을 꺼내주면서 애걸하듯 말렸다.

“여기 있어요. 그만해요.”

등을 밀다시피 해 청년을 돌려보냈다. 그때부터 순모는 라이터 주인에게 무엇이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친근감을 느꼈고 그래서 가끔씩 간식으로 과자나 빵을 사서 옆의 분들하고 나누어 드시라고 드려왔던 것이다. 하루 종일 팔아보았댔자 본전 빼면 몇천 원이나 될지. 귀이개, 라이터, 손톱깎이 등 보기에도 한심스러웠다.

어느 해인가 좀 값비싼 것을 사서 장사에 도움이 돼주려고 참빗을 두 개 샀다. 순모는 그 옛날 동백기름으로 윤이 나는 머리에 참빗질을 하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산 것이었다.

“사모님께서 그건 왜 사왔느냐고 하실 텐데요.”

순모는 이 말을 들으면서 소리내어 웃었다.

“아니 장사 하시는 분이 그런 말씀까지 하시면 됩니까?”

“장사는 못하더라도 마나님께 야단은 듣지 않으시도록 해드려야지요.”

아닌게 아니라 이날 저녁 라이터 주인이 말한 대로 하나도 틀림없이 그대로 말을 들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퍽이나 기분이 상했겠지만 이러한 핀잔을 듣고라도 라이터 주인이 돈벌이가 됐다면 그것으로 족한 게 아니냐는 마음으로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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