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헨델의 ‘메시아’, 고난이 빚어낸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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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Georg Friedrich Hndel)은 본래 교회음악보다는 오페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20세가 되던 1705년에 최초의 오페라 ‘알미라’(Almira)를 작곡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때부터 오페라 작곡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오페라의 선진국인 이탈리아로 가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헨델은 25세가 되었을 때 독일로 다시 와서 하노버 궁정악장이 되었으나 독일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인기가 없었다. 헨델은 미련 없이 독일을 떠나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였다. 런던은 국제적인 도시였고 이탈리아 오페라가 인기를 끌던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헨델은 런던으로 이주한 1710년 오페라 ‘리날도’(Rinaldo)를 쓴다. 그리고 이것이 성공을 거두면서 비로소 국제적인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영국인으로 귀화하여 죽을 때까지 런던에 거주하였다. 그는 생전에 유럽 최고의 음악가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영국을 대영제국으로 통일시킨 앤 여왕(Queen Anne, 1665-1714)의 총애를 받았던 음악가였다. 

헨델은 작곡가로 성공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잘 나가던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그를 시기하는 반대파들이 늘어갔고, 시민계급이 성장하면서 귀족들이 선호하던 헨델의 음악은 외면당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그가 설립한 오페라단이 파산을 당하면서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정신적인 타격에 의한 뇌졸중을 두 번이나 맞으며 건강이 나빠졌다. 

헨델이 이렇게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새로이 눈을 돌린 분야가 바로 오라토리오이다. 그는 마음이 가난한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위한 음악에 헌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경을 소재로 한 오라토리오 작곡에 몰두하였다. 헨델은 1741년 최고의 명작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작곡하였다. 이 한 편의 오라토리오가 46편의 오페라보다 그의 명성을 더 높였으며, 그를 교회음악사에 위대한 공로자가 되게 하였다. 

이 작품은 그 초연의 시기로 보아서는 부활절 작품이다. 그러나 헨델은 1750년 이후 자선을 목적으로 매년 이 작품을 연주했고, 오늘날에도 자선을 목적으로 하여 성탄절에 자주 연주된다. 헨델 스스로 이 ‘메시아’를 32차례나 직접 지휘하였고, 얻어진 수익금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였다. 헨델은 세상 음악으로 출세하였으나 고난이 오고 병들었을 때 교회음악으로 전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생의 후반기에는 오로지 교회음악에 헌신하였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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