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0년 9월 잉글랜드 플리머스항에서 다수의 청교도를 포함해 102명의 이민자들을 태운 메이플라워호가 출항하였다. 이들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 또는 어려운 생활고를 피해 신대륙으로 향했으며, 3개월간의 항해 끝에 12월 21일에 오늘날 매사추세츠 연안에 도착하였다. 그때부터 혹독하게 추운 겨울 날씨와 괴혈병으로 절반 이상이 사망하는 어려운 시련을 겪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신천지를 개척해 나가며 마침 주위에 살던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농사와 사냥 등으로 생활을 영위하였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추수를 한 후에는 먼저 도움을 주었던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어려움 가운데 무사히 대서양을 항해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이렇게 풍성한 곡식을 추수할 수 있게 해 주심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추운 겨울을 나면서 추위와 괴혈병으로 절반 이상이 사망하는 아픔과 희생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기대하였던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주심으로 축복해 주셨음을 감사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정신이 이어져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새기며 감사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기원이 되었다.
예전 초등학교에 다닐 때 1년에 한 번씩 신체검사를 하였다. 체육관에서 시력검사를 하는데 검사표 맨 아래까지 분명히 보이면서 시력이 2.0으로 눈은 너무 좋다는 평을 받았다. 중학교에 들어와서 조금씩 눈이 나빠지다가 중3이 되어서는 칠판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게 근시가 되어서 일찍이 안경을 썼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차차 익숙해졌는데, 다만 친구들이 놀리는 것이 조금은 거슬렸다. 그러나 예전에는 눈이 침침하고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하던 것이 안경을 쓴 후에는 너무나 선명해서 깨끗한 세상을 보는 것 같아 편안하게 생활했다. 그러면서 눈 대신 귀가 예민해져 정말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 ‘우리 몸의 조직은 서로 보완한다’고 자위하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잘 들리던 귀도 몇 년 전부터는 가는귀를 먹어 조금은 불편하지만 70년을 넘어 사용했으니 이제는 조금 낡았다고 자위할 뿐이다. 그러면서 태어나면서 병으로 앞이 안 보이고, 들리지 않기에 말도 할 수 없었던 헬렌 켈러를 생각해본다. 그는 3중고를 겪는 엄청난 고난 속에서도 결코 우리에게 희망을 놓지 말라는 충고를 했다.
그가 썼던 유명한 글이 있다. ‘3일만 볼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소개한 글이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자신을 가르쳐준 애니 설리반 선생을 찾아 인사하고, 친구들을 만나 함께 산과 들을 산보하고, 새벽에 먼동이 트는 장면을 바라보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 작품을 보고, 저녁에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저녁에 3일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 후에 다시 영원한 암흑세계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우리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감사의 자세이다.
우리가 잘 아는 찬양에 ‘날 구원하신 주 감사’가 있다. 받은 것에 감사해 모든 것 주심에 감사하는 가사가 정겹다. 특히 길가에 아름답게 피어 있어 우리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장미꽃이 있음을 감사하는 내용은 편하게 수긍할 수 있다. 그러면서 조금만 부주의하면 찔려 상처 받는 장미꽃에 있는 가시에도 감사한다는 것은 그 뜻이 무엇인지 깊이 음미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로 온 세계가 커다란 곤궁에 빠져있음을 보면, 정말 우리 처지는 그냥 감사할 것뿐이다. 감사절을 맞아 감사할 제목을 찾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라 여겨진다.
백형설 장로<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