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회사, 선교인가 구도인가
교회의 역사는 선교의 역사이다. 선교의 반대말은 구도이다. 구도란 도 즉 구원의 길을 찾아 나선다는 뜻이다. 그러나 선교는 구원의 길을 전하는 것이다. 구도가 자생적이고 자발적이다. 그러나 선교는 자생이 아니다. 바깥으로부터 구원이 임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구원의 힘이 없음을 선교의 구조가 잘 말해주고 있다.
앤더슨 나이그렌이라는 영국 학자가 있다. 그는 「아가페와 에로스」라는 책을 두 권으로 써냈다. 이 책의 제목은 구원의 방향에 관한 것이다. 그가 교회 이천 년 역사를 살펴보노라니 거기 구원의 방향이 둘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곧 아가페의 방향과 에로스의 방향이다. 교회사의 어떤 시대는 아가페의 방향을, 교회사의 어떤 시대는 에로스의 방향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이 책의 제목, 곧 아가페와 에로스를 밧단아람으로 가던 중 야곱이 돌베개를 배고 잠들었을 때 그 꿈에 나타난 사닥다리에서 그 모티브를 얻었다. 거기 천사가 ‘내리락 오르락’하고 있었다. 하늘로부터 땅으로 임하는 방향을 아가페로, 땅에서 하늘로 거슬러 오르는 방향을 에로스로 보았다.
선교는 아가페의 방향이다. 이것이 복음이 말하는 구원의 방향이다.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멘. 구원을 찾아 우리가 땅에서부터 하늘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즉 구원은 에로스의 방향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힘도 능력도 여지도 없다. 구원은 아가페의 방향이다. 구원은 하늘로부터 땅으로 임하는 것이다.
2. 교회 역사의 전개와 한국교회사
이천 년 교회 역사를 시대적으로 구분하면 첫 오백 년은 초대교회사, 다음 천 년은 중세교회사, 그리고 마지막 오백 년은 근대교회사로 구분할 수 있다. 근대교회사는 다시 종교개혁사와 현대교회사로 나뉜다. 유명한 어거스틴은 초대교회 마지막 시기의 인물이다.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시점은 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다. 근대 중 종교개혁사와 현대교회사를 나누는 시점은 1648년의 베스트팔리아조약이다. 그중에서도 1805년은 따로 구분해야 한다. 트라팔가해전에서의 승리로 개신교국이 일약 역사의 지평에 우뚝 솟은 것이다.
한국교회사는 이 중 어디에서 시작되었나? 로마가톨릭교회 즉 천주교회가 먼저 전해졌다. 개신교회보다 꼭 100년 전이다. 1784년 베드로라는 영세명을 가진 이승훈의 세례로부터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러나 개신교회는 그로부터 100년 후 선교사 알렌의 입국으로부터 시작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트라팔가해전 이후이다. 근거리로는 한미수호통상조약이 맺어진지 이태 후이다.
언더우드는 시대를 읽었다. “이것은[한미수호조약은-필주] 확실히 서양 교회가 여기 들어와서 기독교의 신앙을 전파하라는 신호였습니다. … 이태가 지나서 미국의 장로교와 감리교가 사실상 똑 같은 날짜에 한국에 도착한 것입니다.”
류금주 목사
<(총회인준)서울장신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