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 대선의 마무리에 관한 뉴스를 접하면서 믿어지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선거에서 참패한 트럼프 대통령이 그 특유의 언행 정도로 그다지 심각하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들까지 지금은 매우 무겁게 미국이라는 나라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선거란 당연히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기 마련이어서 잡음이 전연 없다고 하면 비현실적일지 모르나 일반 투표자의 47.2%와 선거인단 투표에서 232표를 얻은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이 일반투표에서 51%와 선거인단 투표에서 306표를 획득한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에게 승복을 거부하면서 이번 선거는 자기가 이긴 것을 민주당이 훔친 것이라고 하는 등 매일 엄청난 부정선거의 국제적 음모론까지 펼치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이 투표가 끝난지 거의 3주만에 그것도 인수위 활동을 허용하라고 했다는 트윗을 띄우면서도 선거결과에 대한 승복이나 승자에 대한 축하는 보이지 않는다. 더 가관인 것은 공화당 소속의 상하원의원 대부분이 이런 대통령을 옹호 내지 동조하고 있다면 이것은 한 개인의 일탈이라고 간단히 넘기기에는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21년이라는 긴 세월을 미국(유학과 교수생활)에서 보내면서 느끼고 경험한 바로는 미국 사람들은 겉으로는 매우 준법정신이 강한 개인주의자로 남의 일에 무관심하면서도 무엇인지는 잘 모르나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양보하지 않는 매우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번 대선 결과의 뒤처리 과정을 보면서 그동안 ‘무엇인지’ 잘 모르던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인종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인종문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그들이 직면한 최대의 이슈인데 이 문제를 그들이 바라는 대로 풀지 못한 과거의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은 더이상 믿거나 지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 대타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는 중 그들의 암묵적인 고뇌를 풀 수 있는 사람으로 자칭하고 등장한 대통령 후보가 바로 트럼프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현재 벌이고 있는 대선 불복의 ‘몽니’는 이제 2년도 채 남지 않은 2022년 중간선거에서의 승리와 2024년 대선 출마를 위해 그들을 다시 집결시키는 전주곡으로서의 대선 ‘뒷 풀이’로 이해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통령 트럼프는 두 차례의 대선(2016, 2020) 중에는 물론이고 지난 4년 동안의 직무수행 중에서도 겉으로는 내놓고는 인종차별자(Racists)라고 시인하지는 않았으나 실제로는 인종문제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늘 염두에 둔 행동을 해 온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지지로 지난번 대선에서 승리했고 이번에도 그들의 열광적 지지로 47.2%를 득표한 것이다. 그들은 주로 농촌 지역과 인구 10만 이하의 중소도시에 사는 비대졸자, 농민, 서비스산업의 종사자들과 녹슨지역(the Rust Belt)이라고 말하는 구 광산이나 단순제조업에 종사했던 퇴직 노동자와 백인 빈곤층으로 구성된 유권자들이다. 그중에는 백인우월주의자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사회적 불만자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 불만 속에는 철저한 인종차별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인종문제 보다는 유색인종 인구의 사회적 신분과 소득이 상대적으로 자기들보다 더 급속히 상승하는데 대한 불만자 등 다양한 부류가 포함되어 있다. 인종문제에 못지 않게 그들을 불만케 만든 정책은 지난 반세기 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세계화와 자유무역 때문에 자기들의 평생 직장과 비교적 높은 소득을 박탈당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20세기 초에서부터 1970년 대까지 자기들의 버팀목으로 생각했던 민주당이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믿고 1980년부터 주로 공화당을 선택한 사람들인데 그러나 그들의 고충이 해결되지 못하자 2016년에는 공화당 후보예비 선거전에서는 기라성 같은 많은 전통적 후보들을 다 따돌리고 정치 신인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엘리트들에게 속지 않겠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결정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구사회학적으로 미국 사회의 서로 다른 계층과 지역이 이처럼 대선에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된 데는 다양한 그들을 묶는 연대가 유효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겉으로 내건 미국제일주의 또는 우선주의(the America First or Exceptionalism), 미국을 다시 위대한 국가로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 등의 구호들이 미국식 포퓰리즘(Populism)처럼 보이지만 그것보다 더 직접적 원인은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잡지 아틀란틱(The Atlantic)과의 인터뷰에서 지적한 것처럼 2008년 선거에서 흑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생각한다.
조창현 장로
<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펨부록)정치학 교수 · 전 중앙인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