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탈무드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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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지혜를 담은 책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세 아들에게 낙타 17마리를 유산으로 남기면서 첫째에게 1/2, 둘째에게 1/3, 셋째에게는 1/9을 주도록 유언했다고 한다. 유언에 따라 분배하려고 계산을 해보니 8.5마리, 5.667마리, 1.89마리와 같이 산 낙타를 쪼개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몫을 다 합해도 17마리가 안 되는 이런 이상한 유언을 남긴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세 아들이 서로 다투는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한 지혜로운 노인이 낙타 한 마리를 끌고 와서 그 낙타를 포함해서 모두 18마리를 유언대로 나누라고 했다. 그렇게 나누어 보니 과연 첫째는 9마리, 둘째는 6마리, 셋째는 2마리를 가지고 남은 한 마리는 노인이 다시 가져감으로써 분쟁이 말끔하게 해결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서기 600년쯤에 발간된 바빌로니아 탈무드에는 비슷하지만, 훨씬 더 복잡한 문제가 하나 소개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세 명의 채권자에게 각각 100, 200, 3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데, 남은 재산이 100만 원뿐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탈무드는 33과 1/3만 원씩 균등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남은 재산이 200만 원일 때는 각각 50, 75, 75만 원씩 나누고, 남은 재산이 300만 원이면 50, 100, 150만 원씩 나누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100만 원이면 균등하게 나누고, 300만 원은 비례적으로 나누는데, 200만 원일 때는 무슨 기준을 적용한 것인지 알 수 없고, 또 왜 이렇게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지 지난 1400여년간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최근에야 비로소 게임이론이라는 정교한 수학적 분석방법을 적용해서 그 원리가 밝혀졌다고 한다.
천여 년 전에 그렇게 정교한 논리를 찾아낸 것도 놀랍지만, 일상생활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정서나 힘의 논리로 접근하지 않고 논리와 수학을 적용하여 해결하려는 시도야말로 유대인의 놀라운 지혜가 아닐까 한다.

유산이나 채무관계와 같은 사회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좋은 게 좋다거나 서로 양보하면서 살아야 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탈무드의 배경은 고대 농경시대이지만 현대 산업사회의 문제는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정한 해결책이라는 것도 관점에 따라 수없이 많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원칙을 적용할 것인지부터 합의가 어려운 것이다.
유대인들은 유산 분배와 같은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쟁점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해결을 위한 보편적인 원칙을 찾아낸 다음 치열한 토론 과정을 거쳐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길고 어려운 과정을 탈무드에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다. 그렇게 탈무드는 유대 역사 수천년에 걸쳐 축적된 지혜를 담는 책이 된 것이며, 지금도 탈무드는 새롭고 창의적인 답을 찾아 토론을 거듭하는 유대인들에 의해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탈무드의 답은 물론 정답이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찾아낸 최선의 답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아직 바람직한 정치문화를 확립하고 있지 못한 것은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논리적이고 실용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감성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요, 서로 다른 견해를 토론을 통해서 조정해 나가고 합의하는 토론 문화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탈무드에서 그런 지혜를 배워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김완진 장로
• 서울대 명예교수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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