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인구 분포상 가장 중요한 연령대는 40대와 50대일 것이다.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연령층이다. 교회로 말하면 안수집사와 권사들이 바로 교회의 허리(척추)인 것이다.
동양고전을 봐도 논어(공자)는 인(仁)을 중심으로 춘추시대의 인간형을 제시한다면 맹자는 의(義)를 중심으로 전국시대의 인간형을 제시하고 있다. 논어가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을 군자(君子)라고 했다면 맹자는 새로운 인간형으로 ‘대장부(大丈夫)’를 제시했다. 물론 「맹자」에도 ‘인(仁)’의 개념이 많이 언급되지만 ‘대장부’는 논어에선 다룬 적이 없는 맹자의 개념이다. ‘군자’와 ‘대장부’의 차이는 공자와 맹자의 시대가 다르다는 시대 상황을 전제해야 이해될 것이다. 논어에선 군자를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안정감(不惑)이라고 했다. 어떤 외부자극이나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기반(기초)을 말한다. 환경에서 겪게 되는 여러 충격들 성공과 영화, 가난과 실패, 유배와 격리, 걱정과 근심 같은 것들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외부충격에 다소 흔들릴지라도 무너지지 않는 평정심이다. 공자는 이런 경지를 40대의 불혹으로 보았다. 공자가 죽은 후, 100년 뒤에 맹자는 이 ‘불혹’의 상태를 ‘부동심(不動心)’이라고 규정했다. 젊은 시절 성공과 실패, 칭찬과 비난에 일비일희했던 자신이 40대에 이르러 그 충격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인간이 일생 중에 외부자극과 충격에 상관없이 오뚜기처럼 자기의 경지를 부동의 자세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자립인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겨울이 와도, 폭설이 내려도, 여름의 홍수 태풍이 몰아닥쳐도 ‘독야청청(獨也靑靑)’할 수 있는 경지를 말한다.
현대 정치지도자들은 60~70세가 되어도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이 한 말을 뒤집어 식언(食言)해 버리고 동가숙 서가식(東家宿, 西家食)하면서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바꿔버리는 정치꾼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때 자신들은 위성 정당을 창당하지 않겠다고 한 중대 약속을 어겼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 위해 자신들이 정했던 당헌,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상대 당이 그런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던 그 약속을 개정해 후보를 내고 있다. 공수처법을 정할 때 야당의 비토권을 보장한다고 줄줄이 강조했던 그들이 불리해지자 스스로 법 개정을 해버렸다. 이것은 공의롭지도 못하고 정당하지도 못하며 신뢰롭지도 못하다. 인(仁)은 고사하고 의(義)의 수준에도 훨씬 미달이요 교만한 처사다. 염치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못 들 일인데 너무도 뻔뻔스럽다. 그러니까 교수들이 아시타비(我是他非)나 ‘후안무치(厚顔無恥)’ 또는 첩첩산중(疊疊山中)이나 ‘천학지어’(泉涸 之魚)를 2020년의 사자성어로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 공자의 ‘군자’나 맹자의 ‘대장부’를 논하는 자체가 우습다. 공자와 맹자의 이런 논의는 최소한도 仁, 義, 禮, 智, 信 이 어느 정도 지켜지는 사회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고치기 힘든 병, 경제적인 파산, 친한 관계와의 결별, 단절과 고립, 갑작스런 충격이 밀려올 때 흔들리지 않고 자기다움을 지켜내는 일을 정치나 사회지도층에게 기대할 순 없게 되었다. 뽑힌 사람들이 뽑아준 사람을 무시하고 학대하는 배은망덕의 패륜 사회에서 이젠 국민 스스로 자신을 지켜낼 수밖에 없다.
이른바 물의 역할을 철저히 감당해야 한다. 물은 배를 띄울 수 있다. 물이 없는 배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물은 배를 뒤엎어 침몰시킬 수도 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물 먹일 기회가 오고 있다. 유권자가 똑똑하고 불혹(不惑)과 대장부(大丈夫)로 서 있으면 ‘내로남불’의 무례함은 더이상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김형태 박사
<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더드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