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리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Google+ LinkedIn Katalk +

은혜로운 감정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온유한 마음을 동반한다. 거짓된 감정은 결국 마음도 거짓되게 만든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자기를 높이며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게 된다. 결국 마음속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부드러운 감정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 버린다. 율법적인 깨달음도, 지옥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져 과거와 현재의 죄책감도 덜 받게 되고 결국 양심이 무디어지고 만다.  힘들고 어려운 의무들은 피하고 자신의 편안함과 욕망을 즐기며 위로를 받는다.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반역하며 죄를 범한다. 무디어진 양심은 하나님의 엄중하신 경고와 제약을 피해 간다.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더 나아가 담대하게 죄를 범한다.

은혜로운 감정은 상한 심령, 깨어진 심령에서 흘러나온다. 경건한 슬픔은 마음을 거룩하고 부드럽게 해준다.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의 마음은 부드럽다. 마땅히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주의 판단을 두려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지혜롭게 사는 길이기도 하다. 성도는 거룩한 경외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다. 거룩한 감정을 가진 사람은 잘난 체 하거나 자신의 삶이 소란스럽지 않다. 그에게는 언제나 거룩한 두려움이 있다. 거룩한 담대함은 비굴하지 않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용기가 있다.

리브가는 가장 가까운 관계인 부부로서 이삭과 함께 살기 위해 신부로서 왔지만 약대에서 내려 면박으로 얼굴을 가렸다. 엘리야는 위대한 선지자였지만 하나님과 대화 할 때는 겉옷으로 얼굴을 가렸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셨을 때 급히 땅에 엎드렸다. 어떤 사람들은 위대한 하나님을 너무 합당치 못하게 무례하게 부른다. 마치 하나님과 대단히 가까우며 친밀한 것처럼 거룩한(?) 담대함을 가장하기도 한다. 세리처럼 “하나님시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해야 한다. 죄에 대한 통회와 자복, 부끄러움과 황망한 얼굴로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우리같은 피조물에게 어울리는 자세다. 이런 마음이  성령님께서 함께 하는 모습이다.

은혜로운 감정은 양심을 깨어나게 한다. 양심을 민감하게 만든다.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죄악성을 인식하게 만든다. 은혜는 내 영혼의 죄가 하나님의 뜻과 계명과 하나님의 존귀하심 앞에서  얼마나 거역적인가를 알게 해 준다. 하나님께서 나의 숨겨진 죄를 혐오하시며, 나의 죄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이 얼마나 두려운지를 깨닫게 한다. 죄는 혐오스럽기 때문에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은혜로운 소망을 가진 성도는 소망이 고양될수록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구원받았는지에 대한 의심이 사라진다.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일에 관심이 더 생긴다. 은혜가 충만한 믿음은 자신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지 않는다. 마음을 정하여 하나님을 신뢰할수록 본성적인 악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대신에 도덕적인 악이 역사하는 것을 더욱 경계하게 된다. 잘난 체하는 거만함도 줄어들고 더 겸손해진다. 주님이 계시지 않는 인생이 얼마나 무섭고 황폐한 것인지를 인식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견고한 위로를 받는다. 거룩한 감정을 가진 사람은 심령이 가난함을 느낀다. 가장 위대한 성도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진실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을 느끼는 성도는 딴 생각, 딴 짓을 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돈에 대한 탐욕,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명예를 갖고 싶은 욕심, 권력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도 감히 갖지 못할 것이다. 정치를 하고 싶은 목사는 사임하고 정치를 해야 한다. 두 가지를 다 갖고자 하면 주님의 몸 되신 교회는 신음한다. 하나님께서 결코 원하시는 일도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심령으로 산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