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단어는 인류 최대의 화두요 주제다. 가장 위대하고 숭고하며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단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강의할 때마다 물어본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사랑이 너무 흔해서일까 아니면 대답하기 너무나 어렵기 때문일까 아무도 대답을 안한다.
소위 버전을 달리해서 물어본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합창을 한다. 어쩌면 이들이 합창하듯 눈물의 씨앗이란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아내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자녀들과 남편일 것이다. 자녀나 남편 때문에 눈물 흘려보지 않은 아내들이 어디 있으랴? 자녀나 남편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했는가? 그러고 보면 과연 사랑은 눈물이 아닌 피눈물의 씨앗이다.
“사랑이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남편의 현재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하는 것이다. 남편의 성공 여부와 무관하다. 내게 주신 선물 하나님께서 그를 받아주신 것처럼 나도 그를 받아주는 것이다. 남편의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다.
반대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다. 지적해서 고치려 하기보다 그냥 “그럴 수도 있네요” 하는 거다. 설혹 그 내용이 미심쩍은 구석이 많아도 남편이 결정한 일이 있다면 그대로 수용해 보자. 그리고 불안하거들랑 하나님께 고자질하고 기도로 아뢰자. 사실 남자보다 여자가 직감은 더 예민하다. 아내가 하지 말라는 것 해서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남편이 내 말을 들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간섭하고 해라, 마라 잔소리 한다. 그런데 이만큼 살고 보니 참 후회되는 게 있다. “남편이 하고 싶어 했던 것은 무엇이든지 지지하고 도와줄 걸 그랬다.” 하는 마음이다. 아마 그랬다면 지금쯤 내 남편의 모습은 훨씬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간섭하고 제지하고 바가지만 긁었을까?
어릴 때 읽은 안데르센 동화 중에 이런 게 있다. “할아버지 하는 일엔 틀림이 없다.” 아마 이런 제목이었을 것이다. 말을 가지고 장에 갔던 할아버지는 송아지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암소로 바꾸고 다시 염소가 젖이 잘 나온다는 말을 듣고 염소와 바꾸었고 염소는 다시 알 잘 낳는 거위와 바꾸고 마침내는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바꾸었다. 이것을 본 한 귀족이 “할아버지 집에 가면 틀림없이 할머니한테 혼나시겠어요” 했더니 “아니오. 우리 할멈은 내가 한 일은 무엇이든지 잘했다고 칭찬한다니까요” 하는 것이다. “그럴리가요. 만약 그렇다면 내가 금화를 가득 주겠소”
“좋아요. 내기 합시다.” 그 사람은 할아버지를 따라 갔다. 할아버지가 바꾸는 과정을 설명할 때마다 할머니는 “아유! 참 잘하셨어요. 당신 하는 일은 틀림이 없어요”라며 칭찬을 해주었다.
이를 본 귀족은 할아버지가 금화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며 돈을 주었다.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아마 첫 방에 남편을 넉다운 시켰을 거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영악하고 똑똑하니까.” 그러면서도 우리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강심장을 가지고 있다. 지지해 주고 격려하자. 자, 오늘 집 문을 나서는 남편의 등 뒤에 대고 외쳐주자. “여보, 당신 오늘 진짜 멋있네. 당신 짱이야.”
김영숙 권사
• (사)가정문화원 원장
• 반포교회 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