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의소리] 수어찬양

Google+ LinkedIn Katalk +

필자가 수어찬양을 가까이 본 것은 고3 학생 시절이었다. 대학을 들어가면 오라는 영락교회 농아부의 박윤삼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1972년 대학 입학 후 영락농인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농인들이 수어로 찬양을 드리는 모습이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예배시간에 수어로 찬양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는 교회에 찬양대가 없어서 수어찬양을 찬양대 자리에 서서 부르는 모습은 보지 못하였다. 그 후 1973년 서대문 농아교회에 미국 선교사들이 방한하여 찬양을 하는 것을 보았다. 농인들과 청인들이 함께 수어로 찬양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은혜롭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청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수어로 찬양을 드렸고 농인들도 청인들과 함께 수어로 찬양을 하는 모습은 어떤 장애가 있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다. 수어를 모르는 청인들은 음성찬양과 반주에 더 은혜로운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시각적으로 보는 수어찬양의 모습은 비록 수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깊은 감동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처음 수어로 합창을 하는 모습을 목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인들로 구성하여 수어찬양팀을 처음 시도한 것은 영락농인교회 문영진 목사님께서 신학교 농인 제자들로 팀을 이루어 수어찬양제를 개최한 것이 국내 수어찬양대의 효시가 되었다. 이후 (사)영롱회가 1988년부터 매년 ‘수화찬양제’를 개최하였다. 영락교회 기념관에서의 수화찬양제를 보던 많은 청중, 시중(視衆)들이 마지막에 찬양팀과 같이 찬양을 부를 때는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가 있었다. 이때 마지막 찬양 ‘예수 믿으세요’를 부를 때 문영진 목사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 목소리와 함께 수화로 찬양을 부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수화찬양제’는 5회를 마지막으로 중단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수어찬양의 경우 대원이 수어를 잘못하면 바로 눈에 띄어 실수가 노출되어 통일성이 깨지기 때문이다. 청인의 경우 소리가 너무 높거나 너무 낮아서 소리를 내기 어려우면 그냥 입만 벌려도 전체 합창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움직이는 언어인 수어의 경우 가만있어도 안되고 방향이 틀려도 금방 눈에 띄며 박자가 틀려도 보는 사람이 알아차릴 수가 있어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실수한 대원이 공연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커서 중단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수화찬양제는 앞부분은 전문 음악인들이 출연하고 마지막 2곡 정도만 수어찬양을 하는 프로그램인 ‘사랑의 작은 음악회’로 변경하여 2000년 2월 26일 제1회 음악회를 개최하여 2019년에 19회까지 진행하였다. 전문 음악인들은 대부분 재능기부로 출연해 주셨고 마지막 프로그램에서는 수어로 찬양하는 농인들과 합창으로 함께 하셨다. 수어를 잘 모르는 청인들을 위해 챔버 오케스트라가 반주로 봉사하였다. 작년이 20회이므로 좀 더 성대하게 음악회를 개최하려고 하였으나 코로나-19로 인하여 못하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낯익은 얼굴의 고정 관객도 생겨났다. 외국의 경우 전문 수어 합창단의 공연을 관람하러 오는 많은 청중이 있는 것을 보면 아직 국내에서는 농인의 수어합창을 관람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코로나-19가 이렇게 여러 곳에 영향을 주리라고 미처 생각을 못하였다. 코로나 사태가 잘 극복되어 해마다 열리던 음악회가 다시 개최되어 사랑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안일남 장로
<영락농인교회· 사단법인 영롱회 이사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