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국 하원의원 월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흑인을 노예로 짐승처럼 취급하는 일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영국민들을 향해 이렇게 연설하였다. “여러분은 나의 애국심을 의심하는데, 나는 여기서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습니다. 프랑스는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의 권리를 정당화시키며 피의 프랑스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영국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황금에 눈이 어두워서 다른 인종을 짐승처럼 짓밟는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영국이 진정으로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만약 영국이 노예제도를 계속 지속시키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은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조국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막는 이 노예제도를 폐지하고자 합니다. 이런 일을 자행하고도 살아남은 제국은 역사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월버포스가 노예제도 반대를 외친 후 46년 만에 영국에서 노예제도는 사라졌다. 그는 이 어려운 과제의 성공을 위해 뜻을 모은 친구들과 함께 1792년 클래팜 공동체(Clapham Sect)를 설립하였다. 이 공동체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실질적인 사회 이슈에 연관시켜 토론하는 모임이었다.
클래팜 공동체의 영향력으로 19세기 영국의 복음주의는 완전히 새롭게 변모되었다. 월버포스는 그리스도인이 사회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 분야에 전문가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 경제, 법률, 대학, 군대 등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모았고, 이들의 연합된 힘으로 영국 사회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였다.
클래팜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은 당론보다도 자신들의 신앙적 신념으로 투표하고 발언하였다. 한 국회의원의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나는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투표하였다. 언젠가 그분 앞에 서는 날 부끄러움 없는 국회의원이 되도록 투표하였다. 선거에 낙선하더라도 하나님의 법에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투표하며 살겠다.”
월버포스의 영향으로 19세기 초에는 영국 국회의원 3분의 1이 클래팜에 동조하는 복음주의자들로 바뀌게 되었다. 한국의 기독교인 정치가 중에 월버포스 같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음을 한하노라!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