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287) 존 데이비슨 록펠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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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전 미국의 정유능력이 연간 360만 배럴 정도였는데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330만 배럴이었다. 그는 1880년 다른 회사를 합병하는 방법으로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0-95%를 차지했는데 역사상 이처럼 절대적인 독점권을 확보한 기업가는 없었다. 석유의 생산, 정유, 판매를 담당하던 스탠더드오일 및 계열사들은 1882년 스탠더드오일 트러스트란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문어발식 확장으로 거듭하는 스탠더드오일 사를 두고 뉴욕 주 상원위원회는 ‘이 나라의 상거래 시스템에 번져 가고 있는 질병’이라고 비판하였다. 물론 록펠러가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이 신사적이지만은 않았다. 경쟁사들을 압박해서 하나하나 무너뜨리므로 비열한 방법이라고 비판받았다. 하지만 돈을 버는 과정이 결코 천사와 같을 수는 없다고 여겼다.

1890년대 스탠더드오일은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최강의 기업이자, 뻗어 가는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록펠러는 격렬한 지탄과 오명의 주인공이었다. 록펠러는 사업 초기부터 여론의 중요성을 인식했으므로 많은 돈을 들여서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노력하면 할수록 록펠러와 스탠더드오일 사에 대한 여론과 언론은 더욱 나쁘게 평가되었다.
미국을 알리는 한 역사서는 록펠러에 대해 ‘1870년대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창설해 입법부를 매수하고, 철도 업자들과의 비밀 거래로 운임 할인을 받고, 뇌물과 사보타지 공세를 펴 경쟁사들을 무력화시키므로 정유업 물동량의 90-95%를 차지하였다… 거대 기업 독점은 결과적으로 가격의 인위적 상승, 경쟁의 차단, 임금 저하를 초래했다. 노동자들은 록펠러를 싫어했으며 스탠더드 석유 사는 미국인들이 가장 증오하는 기업이 되었다.’고 했다.

석유 가격 횡포로 소비자와 중소 업체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1911년 미 연방대법원이 나서서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34개의 소기업으로 강제 분할하게 되었다. 불법 독과점으로 경쟁을 무너뜨린 록펠러는 자기 회사의 노동 운동을 철저히 탄압하기도 했다. 펜실베니아 주정부는 록펠러와 8명의 회사 간부를 석유 사업의 독점 혐의로 고소했다. 록펠러의 소문은 나쁘게 퍼졌다. 뉴욕의 대중신문 ‘월드’에서는 스탠더드 사를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뻔뻔하고, 탐욕스러운 독점 회사’로 보도했다. 당시 록펠러는 그가 가는 길에 폭탄을 설치하겠다는 등 수많은 협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 맨하튼 브로드웨이 26번지 뉴욕 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스탠더드 본사가 들어섰다. 10층 높이로 신축한 본사 건물은 후에 28층으로 증축되었다. 이와 같이 스탠더드오일 사는 최고의 번성기를 맞이했다. 가족들은 5번가에 있는 침례교회에 출석했다. 록펠러는 교회재정을 맡았고 아내와 알타, 아들인 록펠러 2세는 수년 동안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1913년 미국 콜로라도 주 탄광에서 광원 9,000여 명이 형편없는 작업 환경 때문에 파업했다. 회사가 고용한 구사대와 광부들이 충돌했고, 이듬해 민병대가 광부들이 머물던 천막촌을 기습해 불을 지르고, 기관총을 쏘아댔다.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해 50여 명이 죽었다. 미국 노동운동사에서 가장 참혹한 ‘러드로의 학살’로 기록된다. 이 탄광의 소유주가 존 데이비슨 록펠러였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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