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18년간 총리로 봉사한 후 평범한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었다. 1954년 270만 인파가 서독으로 이동해 올때 동쪽으로 떠나가는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 가족이 있었다. 그에게는 6주가 되는 딸이 있었다.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삶을 고민하던 그는 서독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살 집도, 목회할 교회도 정해지지 않은 동독의 공산치하로 들어간 것이다.
카스너 목사는 청지기로서 예수님처럼 더 낮은 곳을 향해 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겼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고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역사가 펼쳐졌고 철저한 신앙교육으로 자라나 수학과 언어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동독에서 물리학자로 활동하다 통일 과정에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환경부장관이 되었다. 그러다가 2005년 독일 총선에서 총리가 되었고, 2013년 기독교 민주연합당이 승리를 거두면서 3선에 성공했으며 2017년 4선까지 성공하였다. 소박한 시골교회에서 자라난 소녀가 통일독일의 최고지도자가 되어 유럽의 경제위기 극복과 전세계 자본주의체제의 개혁을 이끌어 온 것이다.
당대의 가치나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시대를 역행했던 그 목사님의 딸이 바로 통일독일을 이끌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이다. 그녀의 재임기간에 그리스 경제위기와 우크라이나 분쟁, 시리아 난민사태 등 국제적 현안이 제기되었으며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고 2006년부터 2015년까지 2010년을 제외하고 포브스는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1위’에 선정했고, 2015년 ‘TIME’지는 그녀를 ‘자유세계의 총리(Chancellor of the Free World)’라는 이름으로 ‘그해의 인물’에 선정하였다. 이번에 독일 국민들은 6분간의 따뜻한 박수로 메르켈 총리에게 작별인사를 전했다. 독일 국민은 그녀를 선택하였고 그녀는 18년 동안 능력, 기도, 헌신 및 성실로 8,000만 독일 국민을 이끌어왔다. 18년동안 어떤 위반과 비리도 없었다. 그녀는 어떤 친척도 행정부에 임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영광스러운 지도자인 척하지 않았고, 자신의 전임자들과 싸우지도 않았다. 그녀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진찍히려고 베를린 시내 골목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는 ‘세계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받고 있으며 600만 명의 남성에 해당하는 한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제 당의 지도부를 떠나 후임자들에게 뒷일을 맡겼고, 독일과 독일 국민은 이전보다 더 나은 상황이 되었다. 독일의 이런 반응은 역사상 전례가 없었다. 도시 전체의 시민들이 발코니로 나갔고, 인기시인, 연주자들 및 시민단체들도 없는 가운데 6분 동안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찬사, 선물, 공연, 북소리도 없었고, ‘Glory Merkel’을 외치지도 않았다. 독일은 그녀가 동독 출신임을 알면서도 하나로 뭉쳤고 이제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는 재임 중 똑같은 복장을 하고 살았다. 그가 치마를 입은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하나님은 이 조용하면서도 성실한 지도자와 함께 일하셨다.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항상 같은 옷만 입었는데 다른 옷이 없느냐?”고 묻자 그녀는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이다”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기자가 “가사도우미가 있는가?”고 묻자 “아니요, 저는 그런 도우미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면서 “저는 매일 집에서 남편과 함께 이 일들을 한다”고 답했다. 또 “누가 옷을 세탁하느냐”고 묻자 “나는 옷을 개고, 남편은 세탁기를 돌린다”고 답했다. “이런 일은 대부분 무료전기를 쓰는 밤에 한다”고 부언했다. 그녀는 일반 아파트에 살고 있다. 총리되기 전이나 후나 그곳에 살고 있으며 그곳엔 경호동, 도우미, 기념관, 정원같은 것도 없다. 중국 사람들이 최고로 여기는 지도자(황제)는 그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사는 경우라고 한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