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지·정·의(知·情·意)로 이루어져있다. 머리로 깨닫고, 가슴으로 느끼고 손발로 실천한다. 다른말로 知·德·體 또는 Head, Heart, Hand(Health)로 표현하기도 한다. 느낄 감(感) 자에는 마음 심(心) 자가 있고 움직일 동(動) 자에는 힘력(力) 자가 들어 있다. 감동(感動)은 마음의 힘이요 인간의 에너지(두나미스/능력)가 있다. 사람은 머리로 이해하고 깨달아도 가슴으로 느껴야(好感/共感) 움직인다. 감동이란 느낌과 움직임이 하나가 된 상태이다. 하지만 그 느낌에 방향(目的)이 없다면 움직임에 길이 없다면 허무하거나 혼동이 오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 ‘깃발이 나부낀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아니다. 깃발이 움직이는게 아니라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아니다.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가슴에 호소하는 대표적인 일이 ‘정치’란 것이다. 최근에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보궐선거부터 2022년 3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위해 각 정당마다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정치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겪어본 대통령과 그 소속 정당 및 대통령이 임명한 공직자들이 하는 일을 보면서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낀 것이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4-5년마다 단 한 번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선거(투표)라는 것이다. 잘났건 못났건, 잘하건 못하건 선거로 뽑혔다는 근거(권위)만으로 임기중의 모든 일을 견뎌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다. 그래서 점점 더 선거(투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정치인들은 매우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상식이 통해야 바른 정치인데 상식에 거스르는 일들이 계속 자행되고 있다. 잘못한 사람이 더 큰소리치는 철면피 몰염치 내로남불의 현상을 너무 많이 보게된다. 정치와 정치인이 국태민안(國泰民安)보다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따라 자기들만의 정치를 할 때 우리는 너무 많은 절망과 고통을 겪게 된다. 특히 2030세대로 통칭되는 소위 MZ세대들의 좌절과 절망은 거의 임계점에 이르게 되었다. 앞이 안보이는 길을 가야 되는 저 젊은이들의 답답함-대책 없음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많은 이들의 가슴에 검댕이 숯이 쌓여 있고 무엇인가 깨부수고 싶은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온 것이 사실이다. 동냥은 못주나마 쪽박은 깨지 않아야 하는데 얻어먹는 마지막 도구인 쪽박마저 깨뜨려버리고 ‘뭐가 어떤가?’하고 약올리는 장면에선 차라리 지구를 떠나고 싶은 심정이 돼 버린 것이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은 바닥에 닿아야 다시 떠오르게 된다. 그네 타기와 부메랑 그리고 시계추의 진자운동 같은 것이 있다. ‘극성지패’란 말도 있다. 극한점에 도달하면 반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새로운 역사가 일어날 필요충분조건이 마련되고 있다. 새벽 날새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이제 천지개벽이 한번 일어날 것이다. 그래야만 유쾌, 상쾌, 통쾌한 정서적 치료가 일어날 것이다. 정치는 합리성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누가 옳으냐보다 누구를 좋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실 인간은 이성만으로 똘똘 뭉친 존재가 아니다. 군중에게는 ‘시대정신’이라는 바람이 있다.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아고라(Agora)에 모여 하루종일 정치토론을 벌였다. 박식하고 머리 좋은 사람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가슴에 호소하는 사람이 더욱 돋보였다. 그래서 소피스트 레토릭(Sophist Retoric)과 같은 수사학이 민주주의와 함께 태어난 것이다. 동시에 시민을 선동하는 데마고기(Demagogy)로 민주주의를 그릇친 것도 바로 그들이었다. 한 예로 세탁기를 고를 때도 과학적인 성능 정보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선전이 잘 통한다. 가령 “팡팡세탁기”나 “짤순이”같은 이름으로 주부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준 것이 좋은 예이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