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보아스] 왜 성전예배인가?(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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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경배하는 모든 행위와 양식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가장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예배하는 자에게도 이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과 행복의 통로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예배는 교회의 생명과 같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성전예배가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정부는 방역을 이유로 작년 8월과 12월과 금년 7월, 3차례에 걸쳐 거리두기를 4단계로 격상시켜 비대면 예배를 드리게 하고 있다.
우리 치유하는교회의 경우 지난 1년 8개월 동안 외부에서 감염된 20여 명의 확진자가 나왔지만 정부의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예배 드리는 동안 성전에서는 단 1명의 전파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더욱이 지난 2월 1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도 “대면예배를 통한 감염 사례는 없었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도 거리두기 4단계로 성전예배를 금지하는 것은 아무런 의학적 근거도 없는 명백한 신앙의 탄압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는 헌법학회 전 회장인 김학성 교수도 지적하였듯이 정부의 방역대책은 ‘피해의 최소성’의 법칙에 분명하게 위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곡동의 스타벅스 카페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 해서 전국의 스타벅스 카페를 폐쇄하지 않듯이 특정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 해서 전국 교회를 폐쇄하고 20명 미만 예배를 드리게 하는 것은 명백한 신앙의 자유의 침해이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지하철이나 버스나 백화점이나 마트나 식당이나 카페는 20명 미만으로 제한하지 않으면서 수백 석, 수천 석이 넘는 교회는 20명 미만으로 제한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교회도 그것들처럼 4명씩 출입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하지 않는가? 이 얼마나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처사인가?

이것은 영적으로 볼 때 정부의 배후에 악한 영적 존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탄이 교묘하게 교회를 폐쇄시키고 비대면 예배를 드리게 함으로 인해 교인들이나 교회의 신앙의 힘을 잃게 만들고자 하는 계략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이유로도 성전예배를 막아서는 안 된다. 지난 날 초대교회 때나 일제시대 때나 6.25전쟁 때도 우리의 선조들은 성전에 모여 예배 드리고 기도하면서 성전예배의 신앙으로 모든 환난을 이겨내고 오늘의 세계의 복음화와 한국교회의 부흥과 대한민국의 번영을 이룩하였다. 그런데 지난 20년 동안 사스, 메르스, 조류독감, 에볼라,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는 전염병 중 가장 치사율이 낮은 코로나19에 우리의 성전예배의 신앙이 무너진다면 앞으로 말세 마지막 때 더욱 심하게 닥쳐올 전염병(눅 21:11)에도 우리는 다 무너지게 될 것이고 더 이상의 한국교회의 희망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우리 한국교회가 모든 신앙생활의 근원이 되는 성전예배의 신앙만은 기필코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 84:4-5, 10-11)

김의식 목사
<치유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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