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의 생활신앙] 한지(韓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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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종이(紙)의 시대는 가고 디지털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종이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우리가 조선 왕조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 역사기록이 한지(韓紙)에 쓰여있기 때문이다. 전통한지는 천년 이상 보존된다. 한지는 최근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지는 삼국시대에 중국의 체지법을 받아들여 만들어졌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그 증거물이다. 이것은 751년경 한지에 인쇄된 것으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보다 앞선다. 또 UNESCO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16건 중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13건이 모두 전통한지에 기록된 것들이다. 통일신라시대는 닥나무 섬유로 만든 한지가 토착화된 시기이다. 닥나무는 전국 어디서나 재배가 가능한 종이 원료다. 고려시대는 한지의 발전기였다. 곳곳에 지소(紙所)를 설치하고 특색있는 한지를 생산했다. 조선시대는 제지술의 완성기였다. 태종(太宗)때 국영조지소(造紙所)를 설치하고 닥종이로 만든 화폐 저화(楮貨) 2천장을 발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서서히 쇠락했다. 이후 1884(고종21)년에 일반 종이(洋紙)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1945년 해방 후 60년간은 한지산업이 거의 붕괴된 시기이다. 1970년 이후부터는 인력난과 기술 전수의 어려움을 함께 겪었으나, 1990년대부터 한지의 연구가 다시 시작됐고 2000년대 이후엔 정부가 지원에 나섰다. 전통한지는 백지(百紙)라고도 부른다. 100번 정도 손길이 가야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그만큼 손도 많이가고 내구성도 탁월하다. 한지는 문필용 뿐만 아니라 문을 바르는 창호지, 벽지 및 온돌지 등으로 사용되어 왔다. 또 기름을 먹여 비올 때 쓰는 갈모와 우산을 만들기도 했다. 한지를 여러 장 겹쳐 기름을 먹이고 옻칠을 하면 방수력이 강해서 바구니, 옷장, 필통, 갓통 등 다양한 생필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중에는 요강도 있었다. 특히 한지로 만든 요강은 새색시가 시집갈 때 가마 안에서 사용하는 요긴한 용품이었다. 요즈음엔 한지의 사용이 더욱 다양해졌다. 한지를 꼬아 만든 한지실에 면, 실크 등 다른 섬유를 섞어 옷을 만들기도 한다. 한지옷은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나며 통풍도 잘된다. 또 식품포장용지나 의료용 항균지나 절연지 등으로도 쓰인다. 스피커의 진동판으로도 훌륭하게 쓰인다. 한지 진동판을 개발한 음향기기 전문업체인 소노다인의 허진 대표는 “한지는 다른 소재에 비해 가벼워 보다 빠르게 진동해 소리를 낸다”며 그 울림이 훌륭해 음악평론가들은 “맑은 가을 농촌의 정자같이 청명한 소리가 난다”고 감탄한다. 한지는 다시 서양에서 문화재 복원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갈라진 캔버스를 고정시키는데 일본의 화지(和紙) 대신 우리 한지(韓紙)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국립 기록유산 보존복원중앙연구소는 5점의 문화재를 한지를 써서 복원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문화재 복원에 한지를 사용하는 한편 경북 문경과 전북 전주의 한지 공장을 직접 견학하기도 했다. 전통한지는 역사성, 예술성, 과학성 면에서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하다. 지금 2024년 등재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한지의 가장 큰 장점은 내구성(耐久性)이다. 주원료인 국내산 닥나무는 섬유조직이 촘촘하고 질겨 한지로 갑옷을 만들면 예리한 화살촉도 뚫지 못한다. 한지는 기다림의 종이다. 한겨울에 수확한 닥나무를 솥에 넣어 찌는데 만 8시간이 걸린다. 찐 닥나무의 껍질을 제거한 뒤 나무속 백피를 삶고 표백하는 과정을 거친다. 가느다래진 닥나무 섬유를 닥풀, 물과 일정 비율로 섞은 다음 이 용액에서 한지를 뜨는 ‘물질’에 들어간다. 대나무발을 이용해 좌우 전후로 용액을 걸러내면 닥나무 섬유가 얽히고설키면서 한지가 된다. 이 한지를 말린 뒤 한지의 표면을 두들겨 다듬는 도침작업을 거치면 약 15일 정도 걸리는 과정이 마치게 된다. 특히 물질에서 장인의 섬세한 손길이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직감으로 한지의 무게와 두께를 계산해 물질을 해야 하는데 워낙 예민한 작업이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지장의 직업은 ‘배고픈 예술가’로 여긴다. 한지는 문명 자체이다. 종이가 있었기에 역사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한복, 한글, 한지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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