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학문이 발달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5‧4세기경 플라톤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아카데미아(Academia)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리케움(Lyceum)을 설립했는데, 이것은 학당(學堂) 수준의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동양문화의 진원지인 중국에서 확실한 교육기관이 나타난 것은 주대(周代)로 보이며, 귀족교육을 위해 대학(大學)과 소학(小學)을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박사(博士)란 본래 중세 유럽대학에서 교육 자격을 가진 사람들을 라틴어에서 교사, 스승을 가리키는 단어인 ‘독트린(doctor)’이라 불렀던 데에서 유래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고구려에서는 372년(소수림 왕 2년)에 태학(太學)이라는 교육기관을 설치하고, 거기에 태학 박사를 두어 교수하였다. 백제에서는 초기부터 교육기관에 5경 박사를 두어 교육하였다. 신라에서는 국학(國學)이라는 교육기관을 설치한 후 682년(신문 왕 2년) 국학의 각 학과에 박사를 두어 교육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國子監)을 설치하고 여러 과에 박사를 두어 교육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성균관(成均館)을 설치하고, 성균관에 박사 3인, 홍문관(弘文館)에 박사 1인, 규장각(奎章閣)에 박사 2인, 승문원(承文院)에 박사 2인을 두었다는 기록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나온다.
오늘날 일반 박사들은 전문 분야에 깊은 연구를 통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 받는다. 더욱이 대학에서 명예박사도 수여 받는 데 이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전문박사들과 명예박사들은 그런 학위들에 걸맞게 인류사회 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밀알박사’는 전문분야 박사나 명예박사처럼 일정한 규정에 맞아야 수여하는 박사가 아니다. 13세기 이탈리아에 유명한 스콜라 철학자이며, 성직자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있었다. 당대 그의 주변인들은 그를 ‘천사박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밀알박사’는 이런 천사박사처럼, 문자적으로 명시된 박사가 아니라, 희생의 제물 된 분들에게 당신은 진짜 ‘밀알박사’라고 자연스럽게 호칭해 주는 박사라는 뜻에서 ‘밀알박사’라는 명칭을 주장하고 싶다. ‘밀알박사’는 대학의 총장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좋다. ‘밀알박사’의 기준은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희생의 제물되어 온 사람들에게 붙여주고 싶은 호칭이다. 성서에서 마가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에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44)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은 ‘밀알박사’의 구체적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가정의 부부가 여러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다가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하자. 그럴 경우 미망인은 자신의 행복은 뒤로 한 채 자신이 한 알의 밀알처럼, 죽고 썩는 마음으로 희생제물이 되어 여러 자녀들을 잘 키워 전문분야 박사와 명예박사를 받을 정도로 성공적인 교육을 했다고 하자. 자녀들을 그런 박사들로 길러낸 어머니를 ‘밀알박사’라고 부르면 어떨까 한다. 교회와 성당에, 일반 사회 공동체에, 더 나아가 국가와 사회에 그런 어머니 같은 밀알박사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밝고 희망적인 사회와 국가가 될 것이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