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예수님과 함께 춤을!” <느헤미야 8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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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불의 전차’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뛴 두 선수의 실화를 그린 작품입니다. 주인공인 에릭 리델과 해럴드 에이브러햄스, 두 사람 모두 금메달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가지만, 에릭 리델은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경기를 뛰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우승이 유력한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합니다.

반면 에이브러햄스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올림픽 100m 달리기 출전을 바로 앞둔 그는 ‘왜 달리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습니다. 그는 달리기가 좋아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중독자에 가깝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한숨을 내뱉으며 말합니다. “만족감! 전 스물 네 살인데 아직 한 번도 만족을 맛보지 못했어요. 언제나 그걸 따라다니죠. 하지만 내가 쫓고 있는 게 무엇인지도 몰라요. 두 눈을 들어 1.2m 너비의 트랙을 내다보며 고독한 10초 동안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고 하는데…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성취감은 우리 시대의 술과 같다고 어느 카운슬러는 말합니다. 성취감을 얻는다고 해서 진짜 커다란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 “나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혹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까?”에 대한 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어떤 일에 대한 성공과 성취는 처음에는 행복감이 밀려들기 때문에, 마침내 목표에 도달했기 때문에, 또는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내 자신을 증명했다는 믿음을 갖게 되지만, 그러한 만족감은 재빨리 사라져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해 또 다른 성공과 성취를 찾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고자 했던 에이브러햄스와는 달리 에릭 리델은 이미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 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는 여동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빠르게 만드셨어. 달릴 때마다 그분이 기뻐하시는 게 느껴져.”

코로나19라는 힘겨운 상황은 교회와 성도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과연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달려 온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놓쳤는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성공과 성취라는 우상은, 우리 자신이 바로 신이라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지혜와 힘과 성과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인정해 주시고 받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목표를 이루어내고 성취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이전에, 먼저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이 회복되어야 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은 서로에게 사랑을 퍼주고 서로를 기뻐하면서 찬양하고 서로를 높이십니다. 셋이 하나가 되어 춤을 추듯이 세 위격은 서로의 영광을 무한히 추구하며 그로 인해 무한히 행복하십니다. 리디머 교회의 팀켈러 목사는 C.S. 루이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세 위격의 춤, 드라마, 삶의 패턴이 우리 각자에게도 똑같이 나타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를 찬양해라. 나를 중심으로 살아가라. 나의 아름다움을 깨달아라. 그러면 춤 속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너는 춤을 위해 창조된 존재니라.”

상황과 환경에 눌려 삼위 하나님과 함께 춤출 수 있는 예배를 잊으셨다면, 봉사와 섬김과 헌신의 기쁨을 내려놓았다면, 혹여 전도의 입술이 막혀버렸다면 다시 한 번 삼위 하나님의 교제와 춤 속으로 들어가 초청 받은 자의 기쁨과 감사를 회복할 수 있기 바랍니다. 코로나19의 상황으로 말미암아 함께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며 예배드리는 것이 어려울 수 있지만, 긴 터널과 같은 이 시간은 말씀 묵상과 개인의 경건 생활에 힘을 쏟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삼위 하나님과 함께 춤추는 향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더욱 온전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날 위해 누군가 내 주위를 돌아주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춤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고 우리가 창조된 이유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 그 교제와 사귐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영원한 기쁨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신앙인의 힘입니다.

유순기 목사
<서울북노회·도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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