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안동 임청각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며, 3대에 석주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10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다. 석주 이상룡 후손들은 해방 후에도 독립운동에 전 재산을 바치는 바람에 후손들은 가난해져 학교에 다니기조차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병화와 허은 여사 사이에 태어난 아들 이항증과 여동생은 고아원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지금까지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1만5180명에 달한다. 단일 지역으로 따지면 전국에서도 경상북도, 그중에서도 안동 출신 독립유공자가 제일 많은 941명이다.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은 우리 모두의 가족사를 대하소설로 만들어 버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Nobless oblige’로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고귀한 신분에 따른 윤리적 의무를 의미한다.
희생이란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타인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다.
한 국가의 위기에 소위 ‘지도층’ 또는 ‘상류층’이라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라를 지키고자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그들은 기꺼이 ‘국민’의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많은 지도자, 법조인 그리고 신앙인들의 자세가 정도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탄식이 그치지 않는 천인단애와 같은 혼돈의 이 시대! 해방 76주년에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에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려 했던 실천 지성인들의 모습을 되돌아 본다.
“삭풍은 칼보다 날카로워
나의 살을 에는데
살은 깎이어도 오히려 참을만하고
창자는 끊어져도 차라리 슬프지 않네
· · · · ·
이미 내 집과 전답 빼앗고
또 다시 내 처자를 넘보는데
차라리 이 머리 잘릴지언정
무릎을 꿇어 종이 될 수는 없도다”
1911년 2월 혹한에 독립운동을 위해 50여 식솔을 데리고 서간도로 망명하던 석주 이상룡 선생이 압록강을 건너면서 읊었던 시이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독립을 보지 못하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돌아가실 때에도 “국토를 회복하기 전까지는 내 유골을 고국에 싣고 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국 땅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며 조국광복을 위해 싸운 독립유공자들의 고결한 정신을 다시 생각하는 광복절 아침이다.
조상인 장로
<고암경제교육연구소장
·안동지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