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낙동강, 다부동 전투 비사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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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상징하는 명산이 비슬산과 팔공산이다. 대구의 북은 팔공산이고 남은 비슬산이 감싸고 있는 수려한 산세 그 서편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낙동강은 1,300리 길로 그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황지연(黃池蓮)못으로 매일 약 5천톤의 물이 용출된다.
그 물은 황지천을 이루고 구문소(求門沼)를 거쳐 태고의 침묵으로 흐르는 물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지 않고 산이 막으면 돌아서 가고 바위가 막으면 몸을 쪼개 휘감아 돌아가고 웅덩이를 만나면 거기 다 채우고 뒷물 기다리다 말없이 간다. 가다가 낙동강과 합류하여 경상북도, 경상남도 및 부산광역시 을숙도를 거쳐 남해로 유입 태평양 바다로 흘러간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북한이 기습적으로 대한민국을 침공하여 발발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22시 휴전협정 체결로 멈춰 현재 휴전중이다. 그 당시 1950년 9월 1일부터 15일까지 2주간 낙동강 전역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고 북한군의 국군과 유엔군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어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낙동강 전투였다.
1950년도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대공세로 대구로 진출하려던 세를 꺾었던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 전투를 진두지휘했던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이 “내가 돌아서거든 나를 쏘아라”라고 피를 토해 외첬던 파란만장의 전쟁비사가 있다.
또한 북한군이 부산 교두보 탈환을 위한 낙동강 전투에서 결국 북한군은 실패로 끝났고 이후 UN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완전 궤멸되었다. 그러나 피아간 많은 희생자를 낸 역사에 길이 남는, 낙동강, 다부동 두 전투다.
이렇듯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이라는 천연 장애물을 활용하고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공세 이전의 전기를 마련함으로써 방어에서 공격으로, 수세에서 공세로, 후퇴에서 반격으로의 대전환을 이루게 하였다. 결국 낙동강 방어전투는 세계공산주의의 자유세계에 대한 위협을 낙동강 일대에서 성공적으로 봉쇄한 작전이었다.
유엔의 집단 안전보장조치에 의한 유엔군의 참전은 세계 역사상 최초의 사례였으며, 세계공산주의의 위협을 막아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유엔군의 참전은 국군은 물론이고 국민들에게 궁극적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였고, 정의를 고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50년 10월 무렵 국군장병과 민족 전체를 뜨겁게 만들었던 노래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전우야 잘 자라’는 해마다 6.25가 올 때마다 우리 모두가 생각나는 현인의 노래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자라

또 ‘진짜 사나이’도 그때 우리가 신나게 목청껏 불러댔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산봉우리에 해뜨고 해가 질적에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이 얼마나 한 맺힌 함성인가, 이 얼마나 끈끈한 전우애인가. 오늘도 낙동강은 피맺힌 슬픔의 애환을 한아름 안고 강정보, 사문진교, 옥연지송해공원을 옆에 끼고, 성산대교, 달성보, 낙동대교, 우곡교, 율지교를 지나 조용히 조용히 남해를 향해, 태평양을 향해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다.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역대하 20:15) 말씀하셨으니 다시는 이땅에 전쟁의 그림자도 비쳐서는 안될 것이며, 대한민국 자손만대에 평화와 번영의 역사로 세계에 우뚝 세워 주시기를 오늘도 나는 하나님께 두손 모아 간절히 기도드린다.

박노황 장로
<대구남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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