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으로 오셨습니다. 여기에 도달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갈릴리 호수를 건너는데, “광풍”(23절)을 만났습니다. 광풍은 호수에서만 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도 광풍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도시 사람”(27절)이었다고 소개합니다. 도시, 헬라어로 폴리스입니다. 꽤 큰 규모의 도시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건너오신 이 지역은 데가볼리(Decapolis)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데가볼리는 열 개의 폴리스, 도시라는 뜻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스라엘과 시리아 지역을 점령한 주전 330년 이후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 문화와 문명을 향유하며 살았던 사람, 그 도시 사람이 광풍을 만났습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도시 사람이 아니라, “귀신 들린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그를 ‘인격’으로 대하지 않고, 그를 피해다니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생텍쥐베르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어린왕자와 술주정뱅이의 대화입니다. 술병과 빈병 무더기와 함께 앉아있는 술주정뱅이에게 묻습니다. “왜 술을 마셔요?” “잊기 위해서지” “무엇을 잊기 위해서죠?” “부끄럽다는 걸 잊기 위해서지” “뭐가 부끄럽다는 거예요?”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이렇게 말하고 술주정뱅이는 침묵합니다. 술을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광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리의 한 단면입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다 싶을 만큼의 수치심, 절망감 속에 있었던 그의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를 붙잡고 있는 귀신이 큰 소리로 부르짖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그냥 사역하시되, 지금 이 사람은 내가 잡고 있으니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사탄은 그렇게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떼어 놓습니다. 이 사탄의 미혹에 속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아갈 때 얼마나 그 삶이 비참해질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어서 두 번째 외치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정말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손과 발이 쇠사슬로 묶여 감시당하는 인생, 그러다 묶어 놓은 것도 끊어버리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달려나가는 인생, 그의 인생을 이렇게 망가뜨리는 귀신의 권세, 이것만큼 그를 괴롭히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을 향해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가장 편하고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 감정이, 내 욕심이, 내 분노가, 내 상처가, 내 열등감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뛸 때, 나는 그것들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서면, 말씀 앞에 서면, 나를 정말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보입니다. 그를 붙잡고 있던 귀신의 정체를 “군대”(30절)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숫자가 많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는 ‘레기온’이라고 하는데, 로마가 각 지역의 통치를 위해 파견한 군대를 가리킵니다. 도저히 물리치거나 몰아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나타냅니다. 우리를 붙잡고 있는 죄의 세력, 세상의 권세가 얼마나 강력합니까. 도저히 내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 앞에 주님 계십니다. 우리는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외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그냥 지나치실 수 없습니다. 귀신 들린 자를 만나고 그냥 지나치실 수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구하십시오. 우리를 살리는 것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말씀의 능력과 권세입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광풍을 잔잔케 하시고,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내 입맛, 내 생각에 맞는 말씀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해 내 생각이, 내 삶이 교정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때 나를 붙잡고 있던 광풍이 그 세력을 잃습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강력한 죄의 힘이 나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진정한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홍순영 목사
<오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