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의길] 생각만 해도 좋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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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두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곡성 옥과교회에 부임하고 첫 부임 심방을 했다. 아들 부부와 함께 살고 있는 노환의 여자 집사님을 만났다. 사람들은 이 분이 지금은 나이들고 병들어 누워 있지만 옥과교회의 산 증인 같은 분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이 분의 추도예배가 돌아오면 구역의 권찰을 맡은 분은 녹음기 테이프 틀어 놓듯이 반복하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본인이 교회를 다니다가 시험에 들어 오랫동안 쉬고 있을 때 주일이면 구역장은 자기 집에 들러서 마루에 앉아서 마루를 치면서 “내 잘못여, 내 잘못여”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시험들어 안방 문도 열어주지 않고 있는 이 분은 내가 교회를 나가지 않는 것은 구역장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도 주일이 되면 어김없이 자기 집에 와서 마루를 치면서 “내 잘못여, 내 잘못여”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목사님 제가 그 분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났어요.” 이 이야기는 추도예배 때가 되면 언제나 틀어진 녹음기가 되었다.
목회하면서 억울하다고 하는 사람, 할 만큼 했다고 하는 사람, 분하고 원통하여 살 수가 없다는 사람은 수없이 봤다. 그러나 앞과 뒤는 없고 무조건 내 잘못이다고, 구역장인 나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분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립습니다. 모든 허물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한 사람을 살리신 장 집사님.’
얼마 전 제가 살고 있는 광주 우리 동(洞)에 동장님이 새로 오셨다. 동장님께서 사무장님과 함께 인사를 오셔서 내미는 명함을 받고 깜짝 놀랐다. 내가 너무 존경했던 장로님과 성(性)이 거의 비슷할 뿐 아니라 이름은 정확히 같았기 때문이었다. 39살에 시작한 담임목사가 순탄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순조로웠고 모든 것이 은혜로 흘러갔다. 그때 같은 시찰에서 섬기던 선배 목사님은 우리 교회가 은혜로 성장하는 데는 그 장로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때는 교만한 생각에 웃기만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그 장로님의 섬김이 얼마나 귀했는지가 깨달아졌다. 당회를 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놓고 의견이 갈릴 때면 “조용히 하세요. 목사님의 의견을 물어서 목사님 하시자고 하는 데로 합시다.” 이 한마디에 당회는 잠잠해졌고 큰 형님 같았던 장로님들은 순종으로 함께해 주셨다. 주일을 포함해서 휴가를 가는 것이 쉽지 않았던 때에 “목사님들은 주일을 쉬는 것이 진짜 휴가입니다. 이번부터는 주일을 포함해서 휴가를 드립시다.” 이렇게 해서 난생처럼 주일을 다른 교회에서 드려보는 호사(?)를 누리게 된 것도 그분의 배려였다. 성전을 건축하면서 이런저런 일들로 머리 아파하는 나에게 “목사님 제가 30대에 장로가 되었는데요, 이런저런 소리 다 들었습니다. 조금만 참으시면 모두 다 지나갑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조금만 참았더니 이런저런 소리는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사라졌다. 이제는 천국으로 이사 가셨지만 생각만해도 좋은 장로님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장로님과 이름이 비슷한 우리 동장님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나와 너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고전 16:18)

최정원 목사<광주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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