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본 삶의 현장] 햇빛 속에 앉아 있는 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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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에서 6시간을 기다리고 비행기를 탔는데도 호놀룰루에 도착한 것은 같은 날 아침 10시 20분이었다. 밖에 나오니 중년 부인이 피켓을 들고 섰다가 나를 맞아주었다. 꽃으로 목걸이를 만든 ‘레이’를 걸어주고 ‘알로하’ 하고 껴안는데 정말 내가 미국에 왔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짙은 꽃향기가 내 코를 알알하게 했다. 좀 눅눅하면서도 훈훈한 대기가 꽃향기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나는 내가 드디어 꿈꾸던 미국, 하와이에 왔다는 생각으로 희열이 온몸을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드라이브하는 모든 길거리는 꽃이었다. 공장지대도 파인애플 냄새로 꽉 차 있었다. 이곳이 유명한 파인애플 공장인 ‘돌 컴퍼니(Dole company)’라고 나를 마중 왔던 여인은 말했다. 그녀의 영어는 동양 사람의 억양이 섞인 듯한 생소한 말투였다. 하와이는 세 가지가 유명한데 설탕과 파인애플과 관광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원봉사자였다. 어찌나 친절했는지 하와이 대학 내에 있는 숙소에 닿자 입교 절차를 도와주고 내가 한인 교회가 있느냐고 묻던 것을 기억해서 전화번호부에서 번호까지 찾아 적어주고 떠났다. 

방 배정을 받자 처음으로 침대 시트라는 것을 끼워서 침대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쏟아지는 잠을 못 이겨 그곳에 쓰러져버렸다. 처음 외국 나들이였기 때문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거의 한숨도 자지 않았었다. 생각해 보니 열아홉 시간을 뜬눈으로 보낸 셈이었다. 잠을 깨자 어스름한 밤이었는데 안경까지 쓴 채 잠이 들어서 어떻게 누워 잤는지 안경다리가 불어져서 쓸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미국 가면 안경이 비싸서 하나 여분으로 사가라는 충고를 거절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돈 아끼더니 미제 안경을 써보겠구나 하고 쓴웃음이 나왔다. 키가 큰 녀석이 방안으로 들어서더니 인사를 청하였다. 자기는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것이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이 방에 배정된 녀석인 모양이었다. 앞으로 친절하게 지내자고 말하며 나더러 저녁을 먹고 오라고 권했다. 식당엔 작년에 온 한국 학생들이 몇 사람 보였다. 반가워하는 표정도 없이 한 학생이 갑자기 나더러 영화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 영화는 너무 좋아서 지금 한 달째 상영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제 보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 막 도착했고 이렇게 안경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에 아무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안경다리는 이 밤에 어쩔 수 없지 않으냐, 그러나 이 영화는 이번 기회가 가장 좋다고 했다. 며칠 있으면 여름 첫 학기가 시작되고 또 가고 싶어도 차편이 없어 못 가니 지금 가 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강권하였다. 그날 밤 각자 얼마씩 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미국에서 영화관에서 본 첫 영화였다. 제목도 모르고 그냥 가서 앉아 있었다. 뮤지컬이었다. 음악과 경치는 퍽 좋은데 그 줄거리는 도저히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국에 오니 반 귀머거리였다. 남이 웃으면 영문도 모르고 따라 웃어야 했다. 거기다가 안경까지 부러져 반소경이었다. 스스로가 한심스러워 다리가 부러진 안경을 눈에 대고 손으로 붙들고 있다가 또 떼었다가 하고 있는데 불이 환하게 켜지며 사람들이 웅성웅성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자!’ 하고 큰소리를 치고 일어나는데 옆에 친구가 지금은 영화가 끝난 것이 아니며 인터미션으로 중간에 쉬는 시간이라고 일러주는 것이었다. 앞으로 반절이 또 남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중간에 쉬는 일이 없었는데 이건 또 처음 겪는 충격이었다. 나는 휴게실에 나가 담배를 한 개비 달라고 해서 피웠다. 그 뒤로는 아예 담배를 사서 다니면서 피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받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이때 본 영화가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

오승재 장로 

•소설가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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