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 “북한의 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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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세계 최고인 분야가 있다. 바로 허세다. 국정보다는 뇌물이 앞서고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곳에선 남들에게 만만하게 보이면 바로 당한다. 끝없이 당한다. 간부들에게 시달리고 동네 건달들에게 무시당하며 사기꾼들에게 이용당한다.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센 척, 강한 척, 있는 척을 해야 한다. 그래서 북한에서 허세는 자기 보호 수단이자 생존 방식이다. 허세의 출발점은 의복이다. 집에선 풀죽을 먹어도 밖에 나갈 때는 차려입고 나서야 한다. 못 먹은 건 눈에 안 띄어도 못 입는 건 바로 눈에 띄기 때문이다. 남자라면 흰 셔츠와 러닝셔츠를 입으려 한다. 잘 다림질한 깨끗한 옷은 잘 사는 사람의 상징이다. 나는 막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을 굳이 내 입으로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 손에 생수통을 드는 것이 포인트다. 배가 나왔다면 금상첨화다. 살찐 사람이 부와 권력의 상징인 곳이 북한이다. 멜빵이 간부들의 전용 패션인 이유다. 그래서 마른 체형인데도 있어 보이려고 일부러 멜빵을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북한에선 셔츠를 밖으로 늘어뜨려 입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중국제 북한장식 허리띠를 구입한 다음날은 사정이 다르다. 상의를 하의 속으로 넣고 바지를 최대한 추켜올려 입는다.

길 가는 사람, 직장 동료들이 모두 쳐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멋있다, 보여 달라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꼭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 별것 아니다라고 무심한 척 해야 있어 보인다. 음식점에서 국시 두 그릇 빨리 달라 시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수가 아니라 국시라고 하는 건 금니 때문이다. 국수라고 발음하면 금니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 없다”의 대사의 핵심은 손목시계를 접대원 코앞에 들이미는 동작이다. 왼손을 한껏 올리고 오른손으로 시계를 여러 번 가리키면 주변의 다른 손님들도 눈길을 준다. 음식점에서 돈을 좀 쓸 요량이라면 외화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마다하고 다 가져오라고 말하면 된다. 함께 간 일행의 시선이 달라진다. 자금이 부족하다면 장마당에서도 비슷한 연출을 할 수 있다. 고기밥, 꽈배기, 삶은 달걀, 떡 매대에 가서 딱 두 마디만 하면 된다. “이거 다 얼마요? 담으라” 하며 반드시 명령문을 써야 하고 흥정을 하거나 값을 깎지 않는 것이 동행자에게 허세 보이는 효과를 극대화하는 요령이다. 허세 하면 술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술은 남성성(男性性)을 사수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첫잔은 사발로 가 북한식 주도의 상식인 까닭이다. 김정일 어록 중엔 주량(酒量)은 도량(度量)이라는 황당한 것도 있다.

남들은 취하게 사발에 술을 부어주고 취중진언(醉中眞言)하게 하는데 부하들을 감시하기 위해 본인은 보리차를 마셨다고 한다. 이러면서 본인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거짓 신화를 유포했다. 이게 김정일의 허세다. 무엇이 북한사람들을 허세로 내모는가? 북한 체제의 모순이다. 김씨 일가는 감추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다. 김정은이 남북 회담에서 보이는 정치적 허세는 비밀을 감추려는 위장막이다. 북한 주민들도 허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서로 속고 속이며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권모술수와 배신이 난무하는 것이 북한의 일상이다. 수백만이 굶어 죽는 곳에선 체면이 밥 먹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암흑의 독재국가 전역에서 보이는 각종 허세는 김씨 일가의 일그러진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허세는 실세를 절대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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