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생은 누구를 만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부모와 스승, 친구, 배우자는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의 인격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다. 물론 친구와 배우자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 선택의 여지도 지극히 제한적임을 곧 깨닫게 된다.
필자의 삶에서 신앙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 신앙 형성기에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신앙인만큼 필자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도 없다고 하겠다. 그 중 한 사람은 우치무라 간조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이다. 물론 두 사람을 직접 대면해 만난 적은 없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책을 통해 만났을 뿐이지만 필자에게는 더 없는 신앙의 친구이고 스승이 되었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에 대해서는 지난 칼럼에서 소개하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치무라 간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치무라 간조를 처음 만난 것은 1970년대 후반 어느 날 친척의 서재에서였다. 당시 필자는 신앙의 문제로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 서재에 꼽혀 있던 20권의 내촌감삼전집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개화기 일본의 기독교인으로 우리나라의 김교신과 함석헌에게 영향을 미친 무교회주의자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우선 그 저술의 방대함에 놀랐고, 그 글에 담겨 있는 사상의 깊이에 또 다시 놀라게 되었다.
우치무라 간조는 그의 저서 『구안록(求安錄)』에서 자신의 신앙역정을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부흥회에 열심히 참석해보기도 하고, 학문연구나 자선사업에 힘을 기울여보기도 하고, 마지막으로는 드디어 신학생이 되어 신학연구에도 몰두해 보았지만 심령의 평안을 얻을 수 없었음을 고백하였다. “아, 나를 구해 줄자는 없는가? 메시아는 아직 오시지 않는가? 우주는 절망 위에 세워졌는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가? 사람은 버림받았는가?”라는 절망의 외침이 그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온전히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하나님의 자애로운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임을 우치무라 간조는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평안을 얻는 길을 알았다. 그러나 길을 안 것은 반드시 길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나는 믿어서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또한 믿게 되어져서 구원받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나는 전혀 자기를 구원할 힘이 없는 자임을 깨달았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내 신앙까지도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기독교 신자는 쉼 없이 기도해야 한다. 그렇다, 그의 생명은 기도이다. 그가 아직 불완전하므로 기도할 것이다. 그가 아직 믿음이 부족하므로 기도할 것이다. 그가 아직 잘 기도할 수 없으므로 기도할 것이다. 은혜를 받아도 기도할 것이다. 하늘에 올라가도 음부에 떨어져도 나는 기도하리라. 힘없는 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다.”
필자도 우치무라와 같이 유교적 집안에서 자라고 동양의 전통사상이 더 익숙했던 터라, 예수구원 불신지옥이라는 단순한 메시지가 불편할 뿐, 버트란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같은 책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복음을 믿고 싶어도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필자에게 우치무라 간조의 진솔한 간증은 바로 필자의 마음을 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김완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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