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여는 말씀] 사탄도 이기지 못한 믿음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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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1:13∼22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21)

사탄은 욥의 신앙이 물질과 소유의 풍요로움에 있다고 끝까지 공격합니다. 욥은 한순간에 물질과 10명의 자녀까지 다 잃지만 내가 적신으로 왔으니 또한 적신으로 가리이다. “주신 이도 여호와요 가져가신 이도 여호와이시니 여호와여 영광을 받으소서.”(21) 라고 신앙으로 받아들입니다. 고난을 신앙으로 감당하며 풀어내는 여유가 있습니다. 내가 과연 이런 상황이라면 어떠했을까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게 합니다. 마음의 안정 평안과 건강 그리고 행복을 추구하며 인생의 안전장치를 위한 목적이 신앙생활이라면 이를 기복신앙이라 하지 않는가요. 참사랑이 그러하듯 신앙의 근본이 인간적인 조건 상황과 소유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라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주심과 욥의 치열한 영적 전쟁을 보게 하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훗날 욥이 깨닫고 고백하기를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 회개하나이다.”(42: 5∼6) 고난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고 철이 들게 하심에 감사드림이 욥기의 절정이라 생각합니다. 

고난의 문제를 세상의 인과응보라는 정신과 사필귀정, 권선징악이라는 윤리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을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으로 찾아가는 한 구도자의 과정을 대하 드라마와 같이 보게 하신 것이 욥기인 것 같습니다. 기독자이면서도 아직도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보다는 불교 정신인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이라는 유교적이며 기독교로 말하면 율법적인 신앙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며 매사 인간사를 운명론적으로 이해하려는 고정관념을 주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깨뜨리며 저의 작은 지식과 경험으로 이웃을 정죄하며 참소하는 것이 작은 죄가 아니요 사단적인 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이란 인간적인 윤리 도덕과 전통과 관습과 율례가 아니며 지식과 지혜와 업적도 아니라 절대자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며 그분의 섭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순종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인간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고난까지도 수용하며 순응하는 것이 믿음이라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나의 구원자로 믿는 믿음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며”(마 16:18) 자신과 세상과 사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뿐이라 하십니다. (요일 5:4) 복음의 힘을 잃은 한국교회가 다시 소생할 수 있음은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라 다 알고 있는 바를 나로부터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주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 할 수만 있다면 이 고난의 쓴잔을 거두어 주소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러나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욥을 보게 하심은 어쩜인가요. 이해할 수 없고 수용할 수 없는 그 어떤 순간에도 마음과 입으로 원망이나 저주를 퍼붓는 죄를 범치 않게 하시고 만사가 주께로부터 왔으니 주께로 돌아가리이다. 진실한 믿음을 지키게 하소서. 믿음이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심장으로 희로애락 모든 것을 품는 일상의 삶인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주신 믿음보다 더 강하고 귀한 것이 없음을 감사하게 하소서.

김유수 목사

<광주 월광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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