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에서 상주까지 (37)
이런 필자의 가정은 “낙동에서 상주로 가는 길에 반쯤 왔을 때” 배위량은 “김서방이 한 작은 마을의 길가 근처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란 사실에 근거해서 볼 때 필자의 가정은 배위량의 일기에 가장 근접하다고 본다. 필자의 이런 가정은 배위량이 영남대로를 걸었을 것이란 당시의 일반적인 사실에도 부합하고 무리한 설정이 아닌 일반적인 순리를 따르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배위량은 예기치 않게 김서방을 만난 것이고 그 때에 만남은 김서방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김서방은 자신이 죽을 병이 들어 당시의 의술로는 고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살기 위하여 홀로 부산까지 걸어서 찾아갔고 그곳에서 서양의술로 치료를 받고자 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병을 고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다시 고향 상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런 경험은 그를 삶의 길로 안내하는 매개가 된 듯하다. 김서방의 적극적인 삶의 태도는 그가 서양 문물에 눈을 뜨게 하였고 그 경험은 서양문화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을 가지는 기회가 되었다. 부산에서 그가 배위량이나, 서경조 등을 만났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부산 방문 경험은 훗날 배위량과 서경조와의 만남을 가지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고, 이 경험은 김재수가 아담스의 조수가 되고 그의 어학 선생이 되어 최초의 대구 경북지역의 조사가 되고, 최초의 목사가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마도 그 이전에 배위량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것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낙동에서 상주로 가는 길에 배위량과 서경조가 김서방을 찾아가게 됨으로 이루어진 예기치 않았던 만남은 김서방이 김재수로 그리고 김기원으로 한국교회에 등장하여 영남지역의 복음 사역자로 이름을 떨치는 위대한 순간이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예기치 않았던 순간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인 블레셋과 전쟁 중일 때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먹을 양식을 전달하도록 보내었는데,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다윗을 적장 골리앗을 죽이는 무공(武功)을 세우게 되고(참조. 삼상 17:12-54),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참조. 삼하 5:1-5; 대상 11:1-3). 바울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잡아 가두기 위하여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어 평생 동안 하나님의 종으로 충성하게 되었다.(행 9:1-19) 모든 인간에게 적어도 한 번의 기회는 온다. 그런데 그 기회가 다시 또 올지는 아무도 장담을 하지 못한다. 그 기회에 어떤 만남이 이루어질지는 신비롭기만 하다. 그 기회가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기회가 왔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면, 그 기회가 소리 없이 아무도 모르게 지나갈 수도 있다. 어떨 때는 매일 매순간이 중요한 기회이기도 한데, 그 매일 매순간의 기회를 놓치고 살아가는 일도 있다.
김서방이 어떤 경로로 김재수가 되었고 그가 김기원이 되었는지 그것을 잘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난 결과들이 참 신비롭다. 배위량이 1893년 4월 28일 금요일 오전에 상주에서 쓴 <일기 1차본>에 기록된 김서방에 대한 글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우리는 어제 오전에 낙동을 출발하였다. 상주까지 반쯤 왔을 때, 우리는 김서방이 한 작은 마을의 길가 근처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2. 우리는 아주 가난해 보이는 작은 집에 살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3. 그는 부산을 떠난 후 7일 만에 집에 도착했고, 며칠 전까지 몸져누워 있었다.
4. 집으로 오는 길에 세척기가 부서져서, 그는 상처를 세척할 수 없었다.
5. 그는 우리가 앉을 만한 방을 가진 이웃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6.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그는 우리에게 그의 친척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7. 그들은 약 12채 정도의 집들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
8. 김서방은 우리에게 식사하고 가라고 간곡히 권했는데, 거절하기 어려웠다.
9. 그와 함께 성경을 읽고 토론을 한 뒤에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10. 김서방은 언덕마루까지 따라와 우리를 배웅했다.
11. 불쌍한 친구! 그는 이제 얼마 살 수 없다.
12. 하지만 그는 성경을 가지고 있으며, 아마도 그의 이웃들보다는 나은지도 모른다.
13. 그의 이웃들은 유교사상에 빠져 있어 성경과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김서방은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일기 1차본>에 없는 내용이 <일기 2차본>에 아래와 같이 언급된다. 번역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여 <일기 1차본>에는 없는 내용을 <일기 2차본>에 새롭게 언급하는 내용이다.
1. 그는 부산을 떠나서 7일 만에 백원(白元)에 도착했고, (이상규는 “현재의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과 외서면 일대이다.”고 한다.)
2. 그는 […] 우리를 약 15채의 집이 있는 작은 마을에 사는 자기 친척들에게 소개했다.
<일기 1차본>과 <일기 2차본>의 번역상의 차이점을 고려하면 크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점은 아래와 같다.
<일기 1차본>
3. 그는 부산을 떠난 후 7일 만에 집에 도착했고,
7. 그들은 약 12채 정도의 집들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
<일기 2차본>
1. 그는 부산을 떠나서 7일 만에 백원(白元)에 도착했고,
2. 그는 […] 우리를 약 15채의 집이 있는 작은 마을에 사는 자기 친척들에게 소개했다.
<일기 1차본>에는 김서방에 부산에서 출발하여 상주 어디에 도착했는지 언급을 하지 않지만, <일기 2차본>에는 도착지가 백원(白元)이라고 분명하게 언급된다. 이상규는 백원(白元)이란 지명을 “현재의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과 외서면 일대이다.”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두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1. 김서방의 고향(또는 거주지)이 상주시 낙동면 화산리(또는 신상리)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상주시 백원(白元)(상주시 사벌면과 외서면 일대)인가?
2. 만약 백원이 김서방의 고향이고 그가 백원에 거주지를 가지고 있고 그의 친척들이 백원 일대에 살았다면 배위량 일행이 그 백원을 낙동에서 상주 가는 길에 방문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상주에서 용궁으로 가는 길에 들렀을 것 같은데, 배위량의 일기가 잘못 기록하는 것인가?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